2009년 7월 25일 토요일

Nobel Lectures

2009년 7월 21일 화요일

2009년 7월 18일 토요일

2009년 7월 5일 일요일

거가 대교

환경운동보다 먼저 해야 할 "생명 살리기" - 성법 스님

정치적 영향을 받는 시민단체와 달리, 종교단체인 불교계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일관성있게 하는 분야가 환경문제입니다.

천성산 지킴이로 지율스님이 보여준 모습은 결과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개인의 신념이 이렇게 강하게 표현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 환경문제의 최대의 현안은 4대강 사업입니다. 경인 운하나 4대강 사업이 대 운하를 염두에 둔 사전 작업이라든가, 4대강 사업 자체만하더라고 불필요하다는 논쟁은 나의 주관심사는 아니고, 더욱 그와 같이 방대하고 범국가적 사업의 타당성을 출가자 중 한명인 내가 감히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조차가 토목과 환경전문가를 무시하는 일이 됩니다.

이 일에 앞장서는 분은 수경스님입니다.
지난번 촛불집회에 이어 시청 앞 광장에서 수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현 정부의 종교편향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불교 대표로서의 수경스님의 낭독문을 듣고, 참 글을 잘 쓰시는 분이고 본받을 만 한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국가 단위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과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인권-환경 이것이 전형적 패턴입니다.
이것은 국민의 정치적 경제적 수준의 도달에 따라 그 취미와 기호가 바뀌는 '틀'과 같은 문화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위스키 중심의 양주에서 와인으로 술 문화가 변화 된다든가, 골프가 특권층의 운동이 아니라 대중화 된다든가, 클래식 등 오페라 공연이 일반화 된다든가, 이런 식으로 거의 통계와 지표로 기준삼아 환산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국가나 인종의 차이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불교계에서도 환경에 발언권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한편, 자유와 인권은 개인의 절대적 가치라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만, 환경은 상대적이고 개인의 이익이 직결되어 있어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순전히 경제성만 놓고 따진다면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 때문에 입은 경제적 피해가 1조 단위를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제적 가치 판단의 근거를 달리하는 것이 결국 환경운동의 명분이기도 합니다.습지 자체의 경제적 가치와 그곳을 고속도로로 통과시켰을 때의 경제적 가치를 비교하듯이 말입니다.

어쨌든 환경운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교계의 중생을 위한 동사섭(同事攝)으로서의 지금과 같은 환경운동에는 이의를 제기할 점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우선 환경운동가들은 정치적 성향을 앞세우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자랑스런 수경스님이 나라면 엄두도 못 낼, 국토 종단 3보 1배는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요즘은 환경 운동의 구호 끝에 '현 정권은 독재에 가깝다'라는 정치적 구호를 넣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환경 운동은 본질적으로 개발을 집행하는 정부나 기업측과 대립 관계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능히 감싸줄 수 있지만, 환경의 범주를 벗어나는 지극히 정치적 사안에 대한 '단언적' 공개 발언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조금 더 출가자다운 세련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리고 창피한 말이지만 불교 자체 내의 환경파괴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는 것도 모순입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책임소재를 따지기 어렵기에 일 예를 들겠습니다.

강화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입니다.
자연석에 부조된 관세음보살상 앞에 이르면 서해가 한 눈에 들어 옵니다.그런데 이 관세음보살상은 대웅전보다 꽤 높은 곳에 있습니다. 마치 대구 선본사 '갓바위' 약사불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관세음보살상에 이르는 길이 대리석인지 화강암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반 빌딩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해놨다는 것입니다.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듯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도록 계단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상식인데 왜 그렇게 했는지 '울화'가 치민 경험이 있습니다.

더욱 보문사의 계단은 눈이 조금이라도 오면 미끄러져 낙상할 만큼 맨질맨질 하였고, 중간에는 시주자가 누구인지를 아주 어색할 정도로 크게 '공고'해 놨었습니다.

결국 사찰은 합법적으로 누구의 반대도 없이 불사라는 명목으로 사찰 주변 환경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불교계의 환경 운동하는 스님들조차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전향적인 '생명 살리기' 운동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운동은 그 시작과 끝이 생명 살리기에 있습니다.
환경이 망가지면 결국 그 과보로 인간에게 피해가 온다는 말을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 그 반대로 환경에 대한 보존의 타당성이 점점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불교는 이제부터 생명 살리기의 '생명'을, 같이 사는 인간에게 우선권을 주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자연 파괴하여 아파트에 살 우선권을 주자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룡뇽 살리고, 개구리 살리는 데 쏟을 힘을 자력 생존이 불가능한 '중생'들에게 쏟고, 환경 운동은 남는 힘 가지고 하자는 말입니다.

동물이 인간보다 더 자비를 받아야 할 우선 대상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엠에프와 작년부터의 경제난으로 국민의 일부 계층은 하루의 생존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으로 암울한 사람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습니다.

더욱 이런 사람들은 늘어가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이들은 정부의 빈곤층 통계에도 잡히질 않습니다.

대학병원에는 암등 치료가 계속되지 않으면 죽음이 뻔한데도, 치료비는커녕 하루 하루 연명할 기초적 생활비조차 없어 망연자실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게 어찌 병든 사람만의 일이겠습니까?
곳곳에 '생명 보존'의 자립이 안 되는 우리 이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이들을 돌본 후에 환경도 돌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재보기에는 사안이 의식주 걱정 안하는 스님들의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제안하건데, 우선 각 본사에서만이라도 사찰에 등록된 신도가 기초 생활의 능력이 안 되는사람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당장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2009년 7월 4일 토요일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고 영감을 받은 멘토들은 '그건 내가 잘 모르겠는데, 너는 아니?' 라고 내게 되묻는 현인(賢人)들이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데에서 진정한 지혜와 독창성이 시작된다." - John Maeda (RISD 총장)

2009년 7월 3일 금요일

2009년 7월 2일 목요일

한국 목사의 수준과 전도 방식




세종대왕의 깊은 뜻을...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깊은 뜻을!

가능하면 한자어를 쓰지 않으면 우리 말의 발전이 빨라진다?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요즘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가끔 길을 묻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아직 ‘언문’도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이다. 지하철 길 안내가 한글로 되어 있지만 이들은 그 한글조차 깨치지 못해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쉬운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상당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 사람들에게 길을 가리켜주기가 쉽지는 않다. 다행히 지하철 노선마다 다른 색의 띠를 사용해 길 안내를 하고 있기에 어느 색 띠를 따라가면 된다고 일러주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제대로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아직도 몇 사람에게 더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아직도 한문을 쓰고 있다면 아마 국민의 99%가 이 한글도 모르는 지하철 승객과 같으리라. 불편한 점이 단순히 길을 묻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안부를 물을 방도도 없을 것이며 각종 공고문을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뉴스조차 읽지 못할 것이다. 눈은 있으되 글을 읽을 수 없어 눈뜬 장님행세를 해야 할 사람이 국민의 99%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참으로 기가 막히지 않은가.

세종대왕께서 562년 전에 백성이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한글을 창제하셨다. 세종대왕의 뜻은 우리 말이 중국말과 달라 서로 잘 통하지 않으므로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누구나 쉽게 익혀 날로 편하게 쓰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큰 뜻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상민(常民)이 쉽게 글을 쓰고 읽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양반(兩班)들은 한자 사용을 고집하였다. 그래서 구한말까지도 행세께나 한다는 사람들은 한글은 ‘언문’이라고 하여 천대하고 한문을 ‘진문’이라고 하여 굳이 그 어려운 한문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어려운 한문을 아는 것 자체가 지위와 연관된 것으로 여겼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상민은 한문을 배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오직 종을 부리는 양반만이 시간을 들여 한문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한문은 말하자면 일종의 신분 증명서와 같았다.

요즘도 아직 한자(漢字)를 쓰지 않으면 마치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 것처럼 또는 글의 품위가 없다거나 지능을 나쁘게 한다는 등의 얼토당토 않은 이유를 내세워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배운 사람들 중에서,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 중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한자를 익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억울하면 배우라는 식이다.

그런데 한자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자를 좀 안다고 글을 쓸 때에 한자를 섞어 쓴다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그 글을 읽을 수가 없다. 그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우리 글이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읽지 못하는 글이 되고 만다. 그래도 이들은 한자를 써야 한다고 우긴다. 내가 아는데 너는 왜 모르느냐, 또는 너는 그것도 모르느냐 하는 태도다.

한문을 오래 쓴 전통으로 인해 당장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편한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병기하면 된다. 글 쓰는 사람의 의도가 잘 전달될 뿐만 아니라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그 글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만약 뜻을 모른다면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그런데 한자를 섞어 쓰게 되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옥편부터 찾아야 한다. 그 글을 읽기 위해 한 단계 더 노력해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쓰기만 하면 쉬울 것을 굳이 옥편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작은 배려조차 거부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한자를 꼭 섞어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할 때는 왜 한자를 꼭 섞어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우리 글을 쓰면서 꼭 한자가 필요하다면 말할 때도 꼭 한자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말할 때 상형문자의 도움이 없어도 의사전달이 된다면 굳이 글 쓸 때에도 한자를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언어생활이 완전할 수 없으며 한자를 사용하여도 완전할 수 없다. 한자를 모르면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으며 한자를 섞어 쓰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자어를 피하도록 노력하되 꼭 써야 할 경우에는 한자를 괄호 속에 넣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남에 대한 배려다.

가능하면 한자어를 쓰지 않기로 하면 우리 말의 발전이 빨라진다. 한자는 우리 말을 대체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한자는 쓰지 않으면 않을수록 우리 말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된다. 한자 사용으로 인해 죽었던 우리 말도 되살아 날 것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562돌을 맞아 다시 한번 세종대왕의 높은 뜻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다음의 훈민정음 서문을 우리 말과 한문으로 쓴 것을 비교해보자.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아 아직도 우리가 한문을 써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아직 한글도 깨치지 못해 길을 물어야 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왜 한자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배운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자의 해독능력이 교육 연수와 비례한다면, 한자는 그 자체가 불평등한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평등한 사회에서 불평등한 글자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http://unifykorea.net/]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한글은 얼마나 우수한 문자일까?

2009년 7월 1일 수요일

종교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Steven Weinberg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New York Times, April 20, 1999.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편: 난 당신과의 결혼을 후회한다...

아내: 앵? 당신, 진짜로 나와의 결혼을 후회 해?

남편: .... 응....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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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난 만족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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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주 가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