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일 토요일

2012 How to Surv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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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8일 일요일

법정 스님의 유서

미리쓰는 유서/법정스님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큰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慙愧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장한 엿장수였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茶毘(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2010년 3월 12일 금요일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약속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박근혜를 위한 변명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좀 더 잘 실패하기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세종시에 대한 입장 - 유승민

『세종시에 대한 입장』

보도자료
2010년 1월 11일 (月)
국회의원 유승민 (한나라당, 대구 동구을)

오늘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하여 본 의원은 다음과 같이 반대입장을 밝힌다.

1. 수정안은 국민혈세로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정경유착이며, 충청표를 의식한 위선적 포퓰리즘이고, 세종시 이외의 지방을 모두 죽이는 잔인하고 위헌적인 차별이다. 수정안이 원안보다 국가이익을 더 증진한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수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 첫째, 땅값 특혜, 세금 특혜, 보조금 특혜, 과학비지니스벨트 특혜, 이주민 특혜 등 국민의 부담으로 세종시에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

▲ 둘째, 권력이 직접 나서서 기업, 연구소, 대학, 의료기관 등에게 세종시로 가라고 강박(强迫)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평당(3.3㎡) 조성원가가 227만원인 땅을 36만원에 팔겠다는 것, 과학비지니스벨트같은 초대형 국책사업을 유치경쟁 한번 해보지도 않고 세종시로 입지를 정하겠다는 것이 특혜의 명백한 증거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특별사면 하면서까지 삼성이 세종시에 투자하도록 만든 것이 강박의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종류의 특혜와 강박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고,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정권의 5대 재벌 빅딜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던 구시대적, 반시장적 행태이다.

만약 대통령과 이 정부가 9부2처2청을 이전하는 세종시 원안이 진정 국가백년대계에 害가 된다고 생각했다면, 정운찬 총리가 취임하기 전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그 동안 수없이 했던 거짓약속에 대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원안을 전면 취소하겠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 -- 이렇게 말하고,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는 충청민심을 돌려보겠다고 원안보다 더 나쁜 수정안을 만들었다.

이 수정안은 국민이 부담하는 엄청난 특혜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것으로서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종시 대못’이 될 것이다.

‘노무현 대못’은 뽑지도 못한 채, ‘이명박 대못’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특혜와 강박을 동원하여 졸속으로 만든 이 수정안은, ▲ 국민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시대착오적 정경유착이고, ▲ 이율배반적, 위선적 포퓰리즘의 산물이며, ▲ 세종시 이외의 다른 모든 지방을 다 죽이고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세종시 폭탄이다.

엄청난 특혜와 정치권력의 강박이 결합된 것, 이것이 신종 정경유착이 아니면 무엇인가?

처음엔 표는 생각하지 않고 국가백년대계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충청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떡 하나 더 얹어드릴까요?”라고 한다.

처음엔 백년대계를 말해놓고 이제 와서는 표를 얻기 위하여 장사하듯이 흥정하는 것, 이것이 이율배반적이고 위선적인 포퓰리즘이 아니면 무엇인가?

수정안에 숨어있는 국민의 엄청난 부담 증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평당 227만원의 땅을 36만원에 거저 준다면, 그 차액인 평당 191만원의 손실은 과연 누가 부담할 것인가?

당연히 거둬야 할 세금을 안받고 국가예산으로 보조금까지 준다면, 이 돈은 과연 누가 부담할 것인가?

이 돈은 국가재정이 부담한다.
즉,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국토해양부 장관은 왜 국민이 이 돈을 부담하는 날벼락을 맞아야 하는지 대답해야 한다.

당초 세종시 예산 22조5천억원 중 14조원은 LH공사의 몫이다.

LH공사(주택토지공사)는 땅을 공짜로 내다파는 이 엄청난 손해를 입고도 과연 앞으로 자기 힘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지 대답해야 한다.

국가재정, 국민부담을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정안이 야기할 ‘세종시 부채’는 이 수정안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가부채, 국민부담이라는 점을 알 것이다.

국민은 새로운 부채를 떠안고, 재벌들과 고려대, 서울대 등 명문대학은 특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세종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지방은 세종시 폭탄에 맞아 기업, 연구소, 대학, 의료기관을 유치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모든 지방이 유치를 꿈꾸던 과학비지니스벨트는 한방에 세종시로 날라가 버렸다.

과학비지니스벨트의 입지를 세종시에 두는 것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국가적으로 왜 최선의 선택인지, 그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가속기벨트는 경주 포항에 있는데 왜 세종시에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서야 하는지, 대덕 R&D특구가 있는데 왜 세종시에 기초과학연구원과 국제과학기술원이 들어서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저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에 들어설 신서혁신도시는 평당 조성원가가 272만원이다.

평당 227만원인 세종시 땅을 그 1/6인 36만원에 내다파는 이 정부가, 평당 272만원인 대구혁신도시 땅을 그 1/6인 45만원에 팔기 위해서 그 어떤 노력과 약속을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혁신도시에도 똑같은 혜택을 준다고?
혁신도시의 땅값에 대한 이 질문에 먼저 답하라.

대구와 오송 두 곳을 첨단의료복합단지로 지정한 정부정책이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세종시에 대형병원, 의료기기산업, 바이오의약산업이 들어선다면 대구와 오송의 첨복은 차라리 세종시로 가져가라.

모든 기업도시, 혁신도시, 경제자유구역, 국가산업단지, R&D특구가 마찬가지 입장일 것이다.

삼성같은 재벌 대기업의 조그만 공장 하나라도 유치해 보는 게 모든 지방의 오랜 꿈이었다.

심지어 대구시는 어떻게든 삼성의 환심을 사보려고 금년에 故이병철 삼성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온갖 이벤트까지 시민의 세금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 정권이 삼성의 대구투자를 위하여 삼성을 설득하거나 이건희회장의 특별사면을 검토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세종시의 자족기능이라고?
정부가 말하는 자족기능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한번도 명쾌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설사 그런 자족기능이란 개념이 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자족기능을 갖춘 유일한 도시는 서울 뿐일 것이다.

다른 모든 지방도시에 자족기능이 없는데, 왜 유독 세종시에만 자족기능이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1억원 미만의 보상금을 받은 세종시 이주민들에게는 특별한 보상과 지원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세종시 이주민만 국민인가?

돈을 주고 이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만 하면 된다는 단세포적 발상이고 장사하듯이 흥정하는 행태이다.
혁신도시, 기업도시는 물론이고 국가사업 때문에 토지를 수용당하고 보상받는 전국의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보상과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위헌적 차별이다.

그래서 이 수정안의 잔인하고 위헌적 차별에 대해 지방은 분노할 것이다.
저의 지역인 대구 경북의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중에서 수정안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구 경북이 수정안의 이 무지막지한 차별 때문에 죽어갈 것인데 본인은 무슨 근거로 수정안에 찬성하는지 선출직으로서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

부산, 경남, 울산, 강원, 제주, 광주, 전남, 전북의 국회의원, 시도지사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에 무슨 친박이 있고 친이가 있겠는가?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친이의 대표적 인물이다.
오죽하면 2005년 행복도시법에 대해 장외투쟁까지 하면서 격렬하게 반대했던 김문수 지사가 수정안에 반대하면서 “경기도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했겠는가?

행복도시 원안에는 이 수정안에 포함된 엄청난 특혜와 납득할 수 없는 잔인하고 위헌적인 차별이 없었다.
수정안은 세종시와 세종시가 아닌 모든 지역 사이의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세종시 이외의 다른 지방에도 과연 똑같은 혜택을 줄 수 있겠는가?
돈이 없다.
국가재정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600km 거리를 둔 독일의 베를린과 본을 예로 들어 행정 비효율을 말하지만 기껏 서울에서 150km에 불과한 세종시가 행정 비효율이라는 한가지 이유로 원안을 폐기하고 수정안에 포함된 특혜와 강박과 차별들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세종시라는 시골에 가서 살기 싫다지만 본 의원이 보기에 기획재정부 조직 중에서 굳이 서울에 남아야 할 것을 찾는다면 골방에서 조용히 환율 operation을 하는 외화자금과 하나 정도 뿐이다.

예산실과 세제실이 세종시에 있다고 해서 무슨 큰 난리가 나는가?

정부부처는 못 간다고 하면서 16개 국책연구소는 왜 세종시에 가야 하는가?
정부가 가라고 하니까 버틸 힘이 없어서?
자가당착, 자기모순이다.

총리실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KDI, 국토연구원, 행정연구원은 정부부처는 서울에 남고 막상 자신들은 왜 세종시에 가야 하는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원안의 행정비효율 對 수정안의 국민부담과 균형발전 저해 -- 이 정부는 과연 어느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 정답을 갖고 있는가?

숫자로 계량화할 수 없는 약속위반, 신뢰상실, 정치적 갈등의 비용을 제외하고라도 말이다.
수정안에는 이에 대한 답이 없다.

동원된 국책연구소들이 청와대와 총리실의 사주에 따라 졸속으로 만든 숫자가 있다면 그건 안봐도 엉터리 숫자일 것이다.
행정부를 분산할 경우 연간 3-5조원이 낭비된다는 연구결과는 엉터리 숫자임이 곧 밝혀질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뒷받침하는 모든 보고서, 주장들은 앞으로 두고두고 검증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원안대로 하면 된다.

2005년 한나라당이 깨질 듯한 고통을 겪고 여야 합의로 만든 안이다.
오늘 발표된 수정안 -- 법이 통과되기도 어렵고 당론변경도 어렵겠지만, 설사 수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는 다시 원안을 끄집어 내어 대선의 이슈로 만들 것이고, 한나라당으로서는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

2012년 대선이 원안에 더하여 이 정부가 약속한 수정안의 특혜까지도 서로 선심쓰듯이 약속하는 더 심한 포퓰리즘의 덫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이 수정안은 새로운 대못 하나가 더 생긴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 입안자들은 알아야 한다.

2. 한나라당은 당헌이 정한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한나라당의 당론은 한나라당이 결정한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한나라당의 당론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까지 한나라당의 당론은 세종시 원안이다.

정부가 졸속으로 만든 수정안을 한나라당이 더 잘 고쳐서 한나라당의 모든 식구들이 합의할 수 있는 안, 더 나아가서는 야당까지 설득해서 합의할 수 있는 안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정치적 선택일 것이다.

우선 한나라당 지도부는 그런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포기하고 수정안을 밀어붙이겠다면, 민주적 절차를 따르라.

원안에서 수정안으로 당론을 변경하려면 당헌 72조 3항에 따라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 조항은 2005년 11월 당헌 전면 개정시 홍준표 혁신위원장과 전재희, 임태희, 이방호, 홍문표, 이명규, 이병석, 박형준, 정문헌, 이재웅 등 혁신위원들이 만든 안에 따라 당헌 72조에 신설된 것이다.
정부의 수정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있다면 당헌당규가 정한 바에 따라 당론변경의 민주적 절차를 밟으면 될 것이다.

2005년 3월 2일 당론을 결정할 때 그랬듯이 비밀투표로 의결해도 될 것이나, 의원 개개인의 소신을 유권자에게 분명히 밝히는 공개투표도 좋을 것이다.

2005년 당론 결정후 그랬듯이 의원 개개인은 당론이 어떻게 결정되더라도 이 중요한 이슈에 대하여 찬성하거나 반대할 자유를 가지면 될 것이다.

수정안이 추진되려면 최소한 행복도시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의 개정과 과학비지니스특별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우리 국회가 이 세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궁극적으로 의원 개개인의 양심과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져야 하며, 의원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지면 된다.

당론변경은 이상과 같은 민주적 절차를 따르면 그만이다.

당을 깨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 와중에 특정인을 감정적으로 헐뜯고 비난함으로써 당의 분열을 부추기는 저급한 행위는 그만두자.
그런 행위야말로 세종시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략적인 권력투쟁에 불과하다.
친이든 친박이든 수정안의 내용에 대해 깊이 고민해서 국민 앞에 당당하게 본인의 입장을 결정하면 될 것이다.

지금 수정안을 밀어붙이기 위하여, 또 이 기회에 당의 분열을 획책하고 당을 장악하기 위하여 싸움에만 골몰하는 세력들은 행정비효율, 지역균형발전, 경제 교육 과학기술의 발전, 정경유착 근절, 자유시장경제 법질서의 확립과 같은 세종시 이슈의 본질적 가치들에 대하여 더 고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