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7일 화요일

한자의 불편한 특성 정창인

2009. 4. 2.
정창인

글자는 말을 기록하기 위한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말이 먼저 생겼고 그 말을 여러 가지 목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나중에 글자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말과 글이라면 소리로 들을 때나 글로 읽을 때 불편함이 없이 같은 의미가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 소리글인 한글과 뜻글인 한자는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말글의 경우, “오늘 하늘이 맑다”라고 말할 경우, 이것은 소리 내어 읽거나 눈으로 읽거나 뜻의 손실이나 불명확한 점이 없이 뜻이 그대로 전달된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완전하다. 그 이유는 우리글이 소리글이다 보니 말하는 그대로 적을 수 있어서 글로서 적어도 전혀 의미의 손실도 없고 불편함도 없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 예문은 조갑제닷컴에서 “명문 시리즈/학문의 길”에 인용된 것이다. “松竹(송죽)에서 변함없는 節槪(절개)를 보았고 白鷺(백로)에서 티 없는 純潔(순결)을 읊었다.” 이 문장이 그리 좋은 예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자의 불편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글은 그냥 그대로 소리 내어 읽어서는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반드시 글자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松竹”의 경우, 이것은 그냥 “송죽”이라고 읽기만 하여서는 뜻이 명확하지 않고 오직 소나무 “松”자와 대나무 “竹”이란 글자를 눈으로 확인하여야 그것이 소나무와 대나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송죽”이라고 읽어서는 그것이 소나무와 대나무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솔잎을 짓찧어서 짜낸 물, “松粥”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뜻을 알 수 없다. 그 아래에 나오는 “절개”나 “백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만 있고 중국에는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사람들에게도 같은 불편이 존재한다. 단순히 소리로만 ‘메이’(mei, 4성(聲)) 로만 발음할 경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선뜻 알 수 없다. 동일한 발음이 누이 매(妹), 어두울 미(味), 그리고 아첨할 미(媚)를 모두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발음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글자를 눈으로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다. 글자를 볼 수 없을 경우에는 그 뜻을 다른 말로 표현해야 한다.

물론 이들 글자들이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다른 글자와 함께 쓰일 경우 뜻이 명확해 지지만, 이 경우에는 굳이 한자의 모양을 확인하지 않아도 뜻이 전달된다. 말하자면 상형문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하여 발음됨으로써 소리문자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한자로 쓰더라도 소리글의 경우는 굳이 글자를 보지 않아도 뜻이 전달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뜻하는 ‘카페이(咖, 口+非)’ 또는 코가콜라를 뜻하는 ‘커커우커러(可口可樂)’의 경우 글자 모양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직 그 발음만이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면 이런 현상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조금 더 논리적으로 따져보자. 말은 말로서 서로 다른 의미를 구별하기 위해 서로 다른 발음을 다르게 조합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하늘과 바다’라고 할 경우, 하늘을 나타내기 위해 ‘하’+‘늘’이라는 두 가지 발음을 사용하게 된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자에서는 하늘은 ‘天’, 바다는 ‘海’로 한 글자로 표시한다. 수 많은 뜻을 글자로 구별하려고 하니 자연 글자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앞의 예문에 나온 ‘백로 로(鷺)’자를 보자. 우리말은 해오라기라고 한다. 그러나 해오라기를 한 글자로 표현하려니까 이렇게 복잡한 글자가 생기게 되었다. 만약에 해오라기를 중국 사람들이 足各鳥로 부르기 시작하였다면, 로(鷺)라는 어려운 글자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어생활에도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애초부터 이렇게 풀어썼다면 그것은 중국말이 소리말이 되고 한자가 소리글로 바뀌었을 것이다.

한자가 배우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소리글이었다면 간단한 몇 가지의 글자로 말을 표현할 수가 있었을텐데 뜻글이다 보니 다른 뜻을 가진 글자를 일일이 구별해서 만들었어야 하고 따라서 글자가 익히기 복잡해진 것이다. 민중사관에서 발행한 “한자사전”을 보니 가장 획수가 많은 글자가 ‘절’자인데, 이것은 용 용자(龍)를 네 개나 합한 글자다. 그 뜻은 ‘말 많을 절’자로서 말이 많다는 뜻이다. “말이 많다”고 하면 될 것을, 또는 용자를 네 개를 나열해도 될 것을(龍龍龍龍), 이것을 굳이 한 글자로 만들어 놓으니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이 글자는 그래도 龍자를 네 개를 겹쳐 놓았으니 익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산 앵도 나무 울’(鬱)자의 경우 비록 전체 획수는 29개이지만, 한 글자를 쓰기 위해 29획이나 긋는다는 것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익히기도 어렵다. 이 글자 대신에, 예를 들어 木缶木宀鬯彡으로 풀어썼다면, 같은 획수를 사용하지만 익히기에 더 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잡한 글자가 생기기 않고 기초가 되는 몇 가지 단순한 글자로 말을 글로 옮길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중국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글자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복잡한 획수를 줄인 소위 간체자를 쓴다. 중국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한자가 전혀 다른 언어에 속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어찌 쉽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직도 한자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경제적 여유를 가진 귀족들만이 배울 수 있었던 한자를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배우기에 어려움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자의 특성과 사회의 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한자는 결코 배우기 쉬운 글자도 아니며 우리 말이 한자가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굳이 한자를 쓸 이유가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한자를 썼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겪는 불편을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여야 한다. 바로 꼭 필요한 한자는 괄호 속에 넣어 쓰는 것이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