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9일 일요일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2008년 10월 7일 화요일
2008년 8월 29일 금요일
2008년 8월 6일 수요일
창와대나 국회나 ...
[사설] 인사청문회 안 거친 장관 얼굴 들 수 있을까 (조선일보)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들 3명의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았다. 야당은 "청와대의 선전 포고"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현행 인사청문회법 제6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가 장관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면 20일 안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그 안에 국회가 인사청문 보고서 작성을 못하거나 안 하면 대통령은 최장 10일까지 기간을 정해 시간을 연장하게 돼 있다. 그래도 안 되면 대통령이 인사청문 없이 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겉만 보면 이번에 청와대는 법의 규정을 그대로 따랐다. 대통령은 7월 11일 장관 임명 동의안을 국회에 냈고, 20일째인 30일까지 청문회가 열리지 않자 다시 6일의 말미를 줬다. 그래도 국회는 원(院) 구성을 놓고 밀고 당기기만 계속하고 인사청문회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장관 임명은 법률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정해진 기간에 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냥 장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지금의 민주당이 집권당일 때 만들었다. 그런 민주당이니 법률적으론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정치 현실로 보면 '청문회도 거치지 않았다'는 꼬리표를 단 장관이 국회를 상대로 제대로 일을 하긴 어렵다. 국회와 국민 앞에서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받지 못한 장관의 권위도 허약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법 규정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청문회가 부담스러운 어떤 장관 한 사람을 보호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사고 있다. 제 손으로 법을 만들어놓고 그걸 깔아뭉갠 국회, 그렇다고 그걸 빌미 삼아 인사 검증도 거치지 않은 '절반짜리' 장관을 만든 청와대, 대한민국 정치 주역들의 한심한 모습이다.
입력 : 2008.08.06 22:08 / 수정 : 2008.08.06 23:00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들 3명의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았다. 야당은 "청와대의 선전 포고"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현행 인사청문회법 제6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가 장관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면 20일 안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그 안에 국회가 인사청문 보고서 작성을 못하거나 안 하면 대통령은 최장 10일까지 기간을 정해 시간을 연장하게 돼 있다. 그래도 안 되면 대통령이 인사청문 없이 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겉만 보면 이번에 청와대는 법의 규정을 그대로 따랐다. 대통령은 7월 11일 장관 임명 동의안을 국회에 냈고, 20일째인 30일까지 청문회가 열리지 않자 다시 6일의 말미를 줬다. 그래도 국회는 원(院) 구성을 놓고 밀고 당기기만 계속하고 인사청문회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장관 임명은 법률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정해진 기간에 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냥 장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지금의 민주당이 집권당일 때 만들었다. 그런 민주당이니 법률적으론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정치 현실로 보면 '청문회도 거치지 않았다'는 꼬리표를 단 장관이 국회를 상대로 제대로 일을 하긴 어렵다. 국회와 국민 앞에서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받지 못한 장관의 권위도 허약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법 규정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청문회가 부담스러운 어떤 장관 한 사람을 보호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사고 있다. 제 손으로 법을 만들어놓고 그걸 깔아뭉갠 국회, 그렇다고 그걸 빌미 삼아 인사 검증도 거치지 않은 '절반짜리' 장관을 만든 청와대, 대한민국 정치 주역들의 한심한 모습이다.
입력 : 2008.08.06 22:08 / 수정 : 2008.08.06 23:00
2008년 8월 5일 화요일
헛기침 한번이면 될 것을 ...
조계사의 경찰 검문이 그렇게도 모독스러웠습니까?
이정희 조선일보 네티즌 younghwancho@naver.com
나의 태생적, 사상적 경도는 佛界임을 밝혀둡니다.
지관스님.
어린 전경이 검문을 한 일 때문에 세상이 좀 시끄럽습니다.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면 끝나는 일을,
그래도 내키지 않으면 헛기침 한번이면 끝날 일을!
허허 하고 웃으면 좋을 일을!
산문을 걸어 잠그고 도 닦는 일로 세상을 사신 분이나, 시정에서 밥 벌어 먹는 일로 세속의 도가 트인 사람이나, 개불알 같이 달랑거리는 욕망이나 명예에 매달리는 태도는 同格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노자께서 설파하셨지요.
도를 도라고 깨치는 그 순간에 그것은 본래의 도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같은 시정의 무지랭이나 조계사 문턱을 승용차를 타고 넘나드는 높은 도의 경지에 오르신 스님이나 변함없이 깨우침의 과정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헛기침이나 웃음이 없으니 市井의 여기저기서 뱀의 혓바닥 들락거리 듯이 온갖 잡스런 말들과 고이한 행태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님의 도는 이미 오래 전에 황금덩어리처럼 굳은 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심의 파워가 무엇입니까?
다투지 않는 것이지요.
불사 이래 불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다툼은 없었지요!
탐닉에 빠진 불심이 결집하여 가해진 폭력이 없었습니다.
신앙의 판세가 바뀌면 대부분의 경우 불상은 목이 달아나고 코가 잘려 나가고 불당이 모래 속에 파묻히는 핍박을 받았지만, 이에 맞서 부처님의 깃발을 앞세우고 타종교를 핍박하거나 보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요!
불살생의 계율 밑에 다투지 않는 무한 자유의 영역이 바다처럼 넓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검문 당하는 불편을 헛기침 한번으로 넘기지 아니 하시고 나이 어린 전경과 날을 세우시니 당장 육신의 생명을 빼앗기지는 않지만, 시정에 파뭍혀 사는 자의 숙명인 사회적 생명을 빼앗길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스님을 멋도 모르고 검문했던(의도적이라고 생각하시면 그 또한 어떻습니까) 전경이 밤낮으로 괴롭게 되었습니다.
그 부모가 또 괴로운 마음에 스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바짝 세우게 될 것입니다.
스님을 검문했다는 이유로 지휘체계 선상에 있는 애꿎은 경찰들과 그 가족들이 전전긍긍하게 생겼습니다.
나처럼 스님의 비아량이 안타까워 성내는 중생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스님의 이름을 걸고 여기저기서 마구잽이로 태클을 거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살생의 마음이 넘실거리고 있네요.
스님께서도 正觀하시면 보일 일입니다.
조계사 경내에 파고든 불법시위 주동자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아직 그곳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속을 종교의 제단 밑에 꿇어 앉히려는 오만함으로 비쳐 마음이 불편합니다.
세속의 일은 세속에 그냥 맡기세요.
종교가 사회적 정의를 세우려는 그 순간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맞서야 한다는 그 순간에 권력화되며, 그 단계에서는 고요한 산사를 걸으며 잠시라도 불심으로 돌아갈려는 중생들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지요.
무엇인가에 맞설려는 마음, 불편한 누군가를 붙잡고 다툴려는 마음, 그것은 불심이 아니지요. 그 마음이 바로 지옥이지요!
스님의 인색한 헛기침 때문에 조계사가 하늘에 솟구친 제단이 되었습니다.
추앙하는 무리와 깃발을 앞세우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산문을 닫겠다고 위협하는 드셈이 산사에 가득하군요.
속스럽고 지저분합니다.
그냥 조용히 수습하기 바랍니다.
때로는 속에서 반쯤 도를 통한 사람의 눈도 정확할 때가 있습니다. 스님!
이정희 조선일보 네티즌 younghwancho@naver.com
나의 태생적, 사상적 경도는 佛界임을 밝혀둡니다.
지관스님.
어린 전경이 검문을 한 일 때문에 세상이 좀 시끄럽습니다.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면 끝나는 일을,
그래도 내키지 않으면 헛기침 한번이면 끝날 일을!
허허 하고 웃으면 좋을 일을!
산문을 걸어 잠그고 도 닦는 일로 세상을 사신 분이나, 시정에서 밥 벌어 먹는 일로 세속의 도가 트인 사람이나, 개불알 같이 달랑거리는 욕망이나 명예에 매달리는 태도는 同格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노자께서 설파하셨지요.
도를 도라고 깨치는 그 순간에 그것은 본래의 도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같은 시정의 무지랭이나 조계사 문턱을 승용차를 타고 넘나드는 높은 도의 경지에 오르신 스님이나 변함없이 깨우침의 과정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헛기침이나 웃음이 없으니 市井의 여기저기서 뱀의 혓바닥 들락거리 듯이 온갖 잡스런 말들과 고이한 행태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님의 도는 이미 오래 전에 황금덩어리처럼 굳은 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심의 파워가 무엇입니까?
다투지 않는 것이지요.
불사 이래 불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다툼은 없었지요!
탐닉에 빠진 불심이 결집하여 가해진 폭력이 없었습니다.
신앙의 판세가 바뀌면 대부분의 경우 불상은 목이 달아나고 코가 잘려 나가고 불당이 모래 속에 파묻히는 핍박을 받았지만, 이에 맞서 부처님의 깃발을 앞세우고 타종교를 핍박하거나 보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요!
불살생의 계율 밑에 다투지 않는 무한 자유의 영역이 바다처럼 넓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검문 당하는 불편을 헛기침 한번으로 넘기지 아니 하시고 나이 어린 전경과 날을 세우시니 당장 육신의 생명을 빼앗기지는 않지만, 시정에 파뭍혀 사는 자의 숙명인 사회적 생명을 빼앗길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스님을 멋도 모르고 검문했던(의도적이라고 생각하시면 그 또한 어떻습니까) 전경이 밤낮으로 괴롭게 되었습니다.
그 부모가 또 괴로운 마음에 스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바짝 세우게 될 것입니다.
스님을 검문했다는 이유로 지휘체계 선상에 있는 애꿎은 경찰들과 그 가족들이 전전긍긍하게 생겼습니다.
나처럼 스님의 비아량이 안타까워 성내는 중생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스님의 이름을 걸고 여기저기서 마구잽이로 태클을 거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살생의 마음이 넘실거리고 있네요.
스님께서도 正觀하시면 보일 일입니다.
조계사 경내에 파고든 불법시위 주동자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아직 그곳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속을 종교의 제단 밑에 꿇어 앉히려는 오만함으로 비쳐 마음이 불편합니다.
세속의 일은 세속에 그냥 맡기세요.
종교가 사회적 정의를 세우려는 그 순간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맞서야 한다는 그 순간에 권력화되며, 그 단계에서는 고요한 산사를 걸으며 잠시라도 불심으로 돌아갈려는 중생들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지요.
무엇인가에 맞설려는 마음, 불편한 누군가를 붙잡고 다툴려는 마음, 그것은 불심이 아니지요. 그 마음이 바로 지옥이지요!
스님의 인색한 헛기침 때문에 조계사가 하늘에 솟구친 제단이 되었습니다.
추앙하는 무리와 깃발을 앞세우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산문을 닫겠다고 위협하는 드셈이 산사에 가득하군요.
속스럽고 지저분합니다.
그냥 조용히 수습하기 바랍니다.
때로는 속에서 반쯤 도를 통한 사람의 눈도 정확할 때가 있습니다. 스님!
2008년 8월 4일 월요일
그놈의 헌법
[시론/허영]‘그놈의 헌법’
우리의 최고 규범인 헌법이 ‘그놈의 헌법’으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헌법에 손을 얹어 국민 앞에 엄숙하게 헌법 준수를 선서하고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에 붙인 불명예 딱지다. 준수해야 할 헌법이 대통령 집권 4년 반을 지나는 동안 경멸과 방해꾼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국민이 어렵게 만든 역사적 산물이다.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결단과 공감적 가치가 담긴 규범적 표현물이다. 노 대통령의 헌법 폄훼는 바로 헌법을 쟁취한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6월항쟁 정신 담긴 최고 규범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도 헌법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헌법을 근거로 권력을 휘두르고 온갖 영예는 다 누린 대통령이 퇴임을 불과 여섯 달 남짓 앞둔 시점에 이처럼 헌법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기야 노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제대로 된 헌법 인식을 가진 적이 별로 없다. 정당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준 정당을 임기 초에 탈당하고 새 정당을 만든 행위부터가 정당대의민주주의 헌법정신에 어긋난 일이었다.
위헌적인 수도 이전 결정과 언론관계법 제정을 비롯해서 인사권과 사면권 남용을 넘어 최근의 기자실 폐쇄 정책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은 헌법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그만인 통치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사면권 남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그는 ‘헌법상의 고유 권한’임을 강변하면서 묵살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그런 고유 권한을 준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헌법이 강조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정당한 권한 행사의 참뜻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자유를 희생하는 좌파적 평등지상주의 교육정책과 경제정책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헌법 이념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진부한 민족주의를 빙자한 대북정책으로 국가 안보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 불법 시위문화를 조장해서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예산을 낭비하고 국가 부채를 양산하면서 재정헌법의 근본이념을 무시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이처럼 수준 낮은 헌법 인식을 가지고 헌법을 무시 내지 모독하는 모습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구보다도 앞장 서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이 추구하는 통합규범적인 기능을 실현하는 데 힘써야 할 대통령이 반(反)통합적인 분열주의를 조장하면서 ‘그놈의 헌법’ 타령만 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 헌법국가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그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헌법 개정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에게 비록 헌법 개정 발의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시기에 헌법 개정을 정치 이슈로 삼아 여러 달에 걸쳐 불필요한 소모적 정쟁을 유발했던 일도 헌법 경시적인 인식의 표현이다.
폄훼하는 노 대통령은 국민 무시
노 대통령은 아마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헌법과의 갈등을 가장 많이 유발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독재정권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헌법을 장식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헌법 준수를 요구하며 시비를 건다는 것부터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명색이 민주적 대통령이고 자칭 ‘세계적인 대통령’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헌법이 추구하는 공감적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굳게 믿는 주권자 다수가 아직은 ‘헌법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통령의 헌법 폄훼와 국민 모독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히 항의하면서 헌법을 더는 폄훼하지 말도록 촉구한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우리의 최고 규범인 헌법이 ‘그놈의 헌법’으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헌법에 손을 얹어 국민 앞에 엄숙하게 헌법 준수를 선서하고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에 붙인 불명예 딱지다. 준수해야 할 헌법이 대통령 집권 4년 반을 지나는 동안 경멸과 방해꾼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국민이 어렵게 만든 역사적 산물이다.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결단과 공감적 가치가 담긴 규범적 표현물이다. 노 대통령의 헌법 폄훼는 바로 헌법을 쟁취한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6월항쟁 정신 담긴 최고 규범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도 헌법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헌법을 근거로 권력을 휘두르고 온갖 영예는 다 누린 대통령이 퇴임을 불과 여섯 달 남짓 앞둔 시점에 이처럼 헌법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기야 노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제대로 된 헌법 인식을 가진 적이 별로 없다. 정당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준 정당을 임기 초에 탈당하고 새 정당을 만든 행위부터가 정당대의민주주의 헌법정신에 어긋난 일이었다.
위헌적인 수도 이전 결정과 언론관계법 제정을 비롯해서 인사권과 사면권 남용을 넘어 최근의 기자실 폐쇄 정책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은 헌법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그만인 통치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사면권 남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그는 ‘헌법상의 고유 권한’임을 강변하면서 묵살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그런 고유 권한을 준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헌법이 강조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정당한 권한 행사의 참뜻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자유를 희생하는 좌파적 평등지상주의 교육정책과 경제정책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헌법 이념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진부한 민족주의를 빙자한 대북정책으로 국가 안보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 불법 시위문화를 조장해서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예산을 낭비하고 국가 부채를 양산하면서 재정헌법의 근본이념을 무시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이처럼 수준 낮은 헌법 인식을 가지고 헌법을 무시 내지 모독하는 모습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구보다도 앞장 서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이 추구하는 통합규범적인 기능을 실현하는 데 힘써야 할 대통령이 반(反)통합적인 분열주의를 조장하면서 ‘그놈의 헌법’ 타령만 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 헌법국가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그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헌법 개정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에게 비록 헌법 개정 발의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시기에 헌법 개정을 정치 이슈로 삼아 여러 달에 걸쳐 불필요한 소모적 정쟁을 유발했던 일도 헌법 경시적인 인식의 표현이다.
폄훼하는 노 대통령은 국민 무시
노 대통령은 아마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헌법과의 갈등을 가장 많이 유발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독재정권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헌법을 장식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헌법 준수를 요구하며 시비를 건다는 것부터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명색이 민주적 대통령이고 자칭 ‘세계적인 대통령’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헌법이 추구하는 공감적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굳게 믿는 주권자 다수가 아직은 ‘헌법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통령의 헌법 폄훼와 국민 모독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히 항의하면서 헌법을 더는 폄훼하지 말도록 촉구한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미적분 모르는 이공대생
[사설]‘미적분 모르는 理工大生’ 책임 안 지는 정부
한국 대학의 이공계(理工系) 입학생들은 수학 과학의 기초인 미적분도 모른다고 미국의 과학 전문주간지 사이언스가 최신호(6일자)에서 보도했다. 이 잡지는 “고교 2, 3학년생 3분의 2가 과학을 배우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며, 이런 ‘과학 문맹(文盲)’이 핵폐기물 처리, 고속철도 건설 등 중요한 과학 담론의 쇠퇴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제 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유명 외국 잡지에까지 그 치부가 소개돼 부끄럽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학습자 중심교육’이니, ‘뭐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느니 하는 평등주의 포퓰리즘으로 1997년 교육과정 개편 때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늘린 결과다. 이로 인해 이과 학생들은 미적분같이 어려운 과목은 기피하기 일쑤다. 반면, 수학Ⅱ를 배우지 않는 문과 학생들은 쉽게 이공계 대학에 진학한다. 해마다 이공계 신입생들은 우열반 편성, 보충수업 형태로 재(再)교육을 받아야 하니 심화된 전공 공부가 그만큼 뒤처진다.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쉽게 출제하도록 해 온 것도 원인이다. 사이언스지는 한국 수능의 어려운 정도가 1980년대 시험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쉬운 수능으로 ‘틀리지 않는 기술’만 배우고, 그나마 등급제로 자기 점수도 모르는 상황에선 학생들이 점수 따기 어려운 수학과 과학을 기피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인도에선 20만 명의 고교생이 어렵기로 정평이 난 수학 물리 화학시험을 치르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한다. 평균 경쟁률이 100 대 1인 인도공과대학(IIT)은 합격자 명단이 신문에 실릴 정도다. 미국 영국도 수학 과학교육에 국운을 걸고 있다. 이공계가 국가경쟁력의 ‘줄기(stem)’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머리글자와 일치한다.
하향 평준화를 고집하는 우리 교육으로는 국가 경쟁력도, 나라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엉뚱한 간섭만 할 뿐, 책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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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이공계(理工系) 입학생들은 수학 과학의 기초인 미적분도 모른다고 미국의 과학 전문주간지 사이언스가 최신호(6일자)에서 보도했다. 이 잡지는 “고교 2, 3학년생 3분의 2가 과학을 배우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며, 이런 ‘과학 문맹(文盲)’이 핵폐기물 처리, 고속철도 건설 등 중요한 과학 담론의 쇠퇴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제 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유명 외국 잡지에까지 그 치부가 소개돼 부끄럽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학습자 중심교육’이니, ‘뭐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느니 하는 평등주의 포퓰리즘으로 1997년 교육과정 개편 때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늘린 결과다. 이로 인해 이과 학생들은 미적분같이 어려운 과목은 기피하기 일쑤다. 반면, 수학Ⅱ를 배우지 않는 문과 학생들은 쉽게 이공계 대학에 진학한다. 해마다 이공계 신입생들은 우열반 편성, 보충수업 형태로 재(再)교육을 받아야 하니 심화된 전공 공부가 그만큼 뒤처진다.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쉽게 출제하도록 해 온 것도 원인이다. 사이언스지는 한국 수능의 어려운 정도가 1980년대 시험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쉬운 수능으로 ‘틀리지 않는 기술’만 배우고, 그나마 등급제로 자기 점수도 모르는 상황에선 학생들이 점수 따기 어려운 수학과 과학을 기피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인도에선 20만 명의 고교생이 어렵기로 정평이 난 수학 물리 화학시험을 치르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한다. 평균 경쟁률이 100 대 1인 인도공과대학(IIT)은 합격자 명단이 신문에 실릴 정도다. 미국 영국도 수학 과학교육에 국운을 걸고 있다. 이공계가 국가경쟁력의 ‘줄기(stem)’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머리글자와 일치한다.
하향 평준화를 고집하는 우리 교육으로는 국가 경쟁력도, 나라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엉뚱한 간섭만 할 뿐, 책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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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운하의 도박성 - 이준구
1. 머리말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신의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약속 어기고 말 뒤집기를 밥 먹듯 하는 정치인은 경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은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다. 당선되었다고 마음이 바뀌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정치인이 될 자격조차 없다. 국민과 정치인 사이의 신뢰관계가 대의민주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은 상식 중에서도 상식에 속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은 당선된 정치인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마지막 하나의 공약까지 모두 지키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선자가 공약을 적당히 깔아뭉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꼭 지켜야만 할 공약이 있는 반면, 지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공약도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요즈음 새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징후를 관찰해 보면 이 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표를 얻기 위해 끼워 넣은 선심성 공약, 예컨대 신용불량자 구제나 이동통신료 인하 약속을 지키겠다고 부산을 떨다가 여론의 포화를 맞고 주춤거리는 모습이 그 단적인 예다. 그 선심성 공약들은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시장주의와 상반되는 성격의 것들이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공약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점과 관련해 한층 더 염려스러운 것은 소위 '대운하사업'이라고 부르는 공약이다. 수에즈 지협이나 파나마 지협에 운하를 판다면 아무도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길쭉한 반도의 지형을 가진 나라에서 긴 쪽을 따라 운하를 판다면 그것은 정말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동안 서울과 부산을 잇는 육로, 해로가 없어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 공약으로 인해 표를 얼마나 얻었는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말해 상식을 벗어난 발상임이 틀림없다.
대운하사업이 핵심적 공약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것을 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태의 진전 여부에 따라 심각한 국론 분열까지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확한 다수의 반대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든다면 그것은 대단한 만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면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엄청난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민심에 비추어 볼 때, 대운하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그리 쉬울 것 같지 않다. 대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리 절박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국론 분열이란 도박을 하지 않고 이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적절한 구실을 붙여 차후의 과제로 미루는 모양새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면 퇴로를 마련해 놓고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스스로 퇴로를 막고 덤비는 모습을 보이니 걱정이 클 따름이다.
이 당선자와 주위 사람들이 과거에는 야당이었으니 아무 말이나 해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국정을 책임지게 된 상황에서 체면이나 사소한 이득을 위해 위험스런 도박을 감행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냉철한 자세로 돌아가 대운하사업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한다. 만약 이 일로 인해 국론 분열이란 비극이 초래된다면 앞으로 임기 내내 이 문제로 발목을 잡힐 것은 물론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다수결에 기초한 대의민주제의 문제점
무엇보다 우선, 당선된 정치인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어떤 후보가 내건 공약의 모음을 정강(plat)이라고 부르는데, 정강은 가장 많은 표를 끌어모은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 정강이 가장 성공적인 정강이 되는 것이다. 투표자가 이 정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투표자가 어느 한 후보에게 표를 던질 때 그의 공약 전체를 완벽하게 지지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떤 공약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더 중요한 공약을 지지하기 때문에 표를 준다는 차원에서 표를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투표자들의 성향을 미리 짐작하고 가장 많은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공약의 조합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후보가 전 국민의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각 개별공약에 대한 지지도는 50% 수준을 훨씬 더 밑돌 수 있다. 그런 공약이 한, 두 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많을 수도 있다. 그와 반대로 선거에서 진 후보의 공약 중에도 지지도가 50%를 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모든 공약을 그대로 실천해도 좋다는 백지수표가 발행되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제는 대통령이 되는 데 국민 50% 이상의 지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투표율이 어떤 수준이든 간에 다른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대통령으로 뽑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 중 아주 적은 비율의 지지를 얻고서도 대통령으로 뽑힐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이 당선자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고 하지만, 투표율까지 감안해 생각해 보면 고작 전 국민의 30% 내외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그나마 이 30% 수준의 지지율이라는 것도 이 당선자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100% 흔쾌한 마음으로 표를 던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치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찍었다는 사람이 섞여 있다면 실질적인 지지율은 더 내려갈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 이런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 비율이 아주 낮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이 당선자가 내건 공약 전반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개별적인 공약의 차원으로 내려가면 국민의 지지도가 정말로 낮은 수준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거에 이겼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우리가 말한 대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각 개별 공약에 대한 지지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결과에 기초해 정책 수행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지난 선거의 결과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한 가지 점이 있다. 그것은 이 당선자의 '경제 살리기' 공약에 대한 기대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도 사회·경제·교육의 측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공약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대운하사업에 대한 기대가 미친 영향은 지극히 작았을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서의 표 쏠림현상이 대운하사업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운하사업이 이 당선자의 공약 중 국민의 지지도가 낮은 중 하나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짐작일 뿐이며, 이처럼 정확한 진상을 모르는 것은 이 당선자 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이 대운하사업의 즉각적인 포기는 아니다. 국민의 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도록 노력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이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적 승인이 이미 난 것이라도 되는 듯한 언행을 보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다.
3. 경제적 타당성 평가의 문제
요즈음 언론에서 대운하사업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이 당선자 측이 선거 전에 작성한 평가보고서에 주로 기초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후보의 캠프가 선전용으로 만든 평가보고서가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으로 평가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평가보고서가 대운하사업 관련 찬반논쟁의 기초로 사용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당선자 측의 평가에 따르면 대운하사업에서 기대되는 편익이 소요 비용의 2.3배에 이른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땅을 파기 시작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수익성이 좋은 공공사업을 즉각 시작하지 않는 것은 범죄적 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이렇게 좋게 나온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평가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편익을 부풀리고 비용을 줄여서 계산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대운하사업에 관한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이해관계를 갖지 않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에 평가 작업을 다시 맡겨야 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평가보고서 없이 찬반토론을 시작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선거가 모두 끝난 이 시점에서 선거용으로 작성한 보고서가 갈 곳은 휴지통밖에 없다. 지금은 생산적인 찬반토론 그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연 그 평가 결과가 얼마나 신빙성을 가질 것이냐는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과거의 굵직한 국책사업들, 예를 들어 경부고속철이나 새만금 같은 사업의 타당성 평가결과를 보면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내가 그와 같은 사업의 평가과정에 간여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정부가 원하는 사업이면 반드시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analysis)이라는 것은 그다지 과학적인 분석방법이 아니다. 편익과 비용을 제 맘대로 조작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수법을 쓴다면 모를까 교묘한 방법으로 편익과 비용을 조작하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쉽게 잡아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업이 타당성을 갖는다는 결론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예를 들어 경부고속철사업의 경우, 나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그 사업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업의 심의과정에 참여할 때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테니 제발 심의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첫 번째 회의에서부터 정부가 그 사업의 추진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점은 번번이 묵살되었고, 모든 것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적자투성이 경부고속철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는 왜곡 평가의 정도가 그보다 한층 더 심했다. 정부가 주도해 작성한 평가보고서는 수많은 명백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곡 평가에 사용되는 수법의 전형적 사례로 교과서에 실릴 만한 것들도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그 타당성 평가가 적합한 것이라고 최종적인 판결을 내렸다. 불행하게도 비용-편익분석을 둘러싼 싸움은 누가 진리에 가까이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힘이 세느냐에 의해서 그 승부가 결정된다.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겉으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내막에서 평가 결과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경부고속철사업이나 새만금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벌써부터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평가보고서의 망령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수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4. 대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어떻든 간에, 나 자신은 이 사업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대운하를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데 있다. 과거에는 산을 깨부수고 물길을 돌려 국토를 개조하겠다고 난리법석을 치면서 그것이 바로 경제개발이라고 떠들어대던 적이 있었다. 이렇다할 공장 몇 개도 변변히 없던 나라에서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하천의 물길을 똑바로 만들고 시멘트 둑을 쌓아 놓는 것이 개발이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여기저기에 인공시설물을 만들어 놓고 이제는 여기까지 문명의 손길이 뻗치게 되었다고 자축하던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상태를 파괴하는 것이 바로 개발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고가도로까지 설치한 장면을 찍은 사진을 서울의 발전상으로 선전하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던 것에서 보존의 대상으로 보는 것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자연은 원래의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새로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버리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당선자 자신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킴으로써 시민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는 사실이 바로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입증해 주고 있다.
멀쩡한 강에 갑문을 만들고 멀쩡한 산에 수로 터널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강은 자연 그대로 흐르게 놓아둘 때 가장 건강할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홍수 조절이나 용수 확보를 위해 부득이 손을 댈 수는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건강한 자연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대운하사업이 구상하고 있는 정도의 대규모 개조가 주변의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다. 과거라면 운하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만을 따져 그것을 건설할 지의 여부를 결정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적 이득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당선자 측의 평가보고서에서 편익-비용비율이 2.3이나 되는 높은 수치로 계산되어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고 본다. 이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예기치 못한 악영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그런 장밋빛 전망을 할 수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과거 개발연대에서는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이런저런 사업을 밀어붙인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개발에서 보존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지금 그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접근방법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대운하사업을 통해 환경이 더욱 개선될 것이라는 이 당선자 측의 주장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에서 가장 건강할 수 있다.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운하사업이 하수도 처리장을 건설하는 일이라도 되는 듯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없던 물길을 새로 만들고 멀쩡한 산을 깎아내리는 일일 뿐 아니라, 그 주변에 건물이나 도로 등 수없이 많은 인공구조물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대운하사업이 주변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은 새로운 여건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할 것이다. 교란된 생태계가 새로운 균형을 이루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언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기상이변 같은 예기치 못한 사태와 결합하는 경우에는 주변 생태계에 미증유의 대재앙이 닥칠 가능성까지 있다. 강 밑바닥을 준설하고 육상 물동량을 운하로 돌림으로써 환경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대운하를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제는 경제의 무게 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벌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지식의 창출과 유통이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반도체처럼 작고 가벼운 물건의 생산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물자의 유통이 거북이걸음으로 늘어나는 반면, 지식과 정보의 유통은 토끼걸음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물류 그 자체의 성격도 비용보다 시간이 점차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무역의 경우에도 운임이 해상운송보다 몇 배나 비싼 항공운송 쪽을 선택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측이 아무리 애를 써도 감출 수 없는 하나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운하를 통한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 수단에 의한 소요시간보다 엄청나게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업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운하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물류 촉진을 위해 운하를 판다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운하를 파는 토목사업은 그 자체로 구시대의 냄새를 풍긴다. 경제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역점 사업 중의 하나로 이런 구시대적인 토목사업을 들고나오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경제구조 선진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착수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서 운하 파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5. 민자유치의 허구성
대운하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이 당선자 측에서는 '민자유치'라는 편법으로 예봉을 피해가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부문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운하사업에 참여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부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전부 민간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니 국민이 염려할 바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보수언론도 여기에 가세해 대운하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궁극적 평가는 민자유치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가소로운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의 '경' 자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운하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그것이 가져올 환경피해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환경피해가 발생해도 자신의 수익성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업으로 인해 아무리 큰 환경피해가 날 것이 예상된다 해도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의 결정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민간업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그 사업이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간업자가 대운하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할 때는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만을 고려한다. 아무리 사회적 의식이 높은 기업이라도 자신이 직접 지불하지 않는 비용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으로 인해 환경피해가 발생한다면 누군가는 이와 관련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관점에서 본 비용은 민간업자가 인식하는 비용보다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대운하사업이 공공사업의 성격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사회적 관점에서 파악한 비용에 기초해 그 사업의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간업자가 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들의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득이 예상된다는 것을 뜻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사업을 수행할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면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운하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은 그 본질상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격차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로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방법이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수도권의 상수원으로 쓰는 저수지를 유료 낚시터로 개발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하자. 이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문제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100% 민자사업으로 진행시키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업자는 낚시터로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만 부담하면 되고 수질오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 후 이 사업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민간업자가 그 낚시터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것이 분명한데, 이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업이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대운하사업과 지금 예로 든 유료 낚시터 사업이 그 기본골격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갖지 않는 쌍둥이 사업이라는 점에 주의하기 바란다. 유료 낚시터 사업의 민자유치가 갖는 의미를 대운하사업의 민자유치에 대입해 보면 내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사실은 그 저수지를 유료 낚시터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민간업자가 먼저 냈다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말려야 한다. 정부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개인적인 이익만을 따지는 민간업자의 행동을 감시하고 규제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원론 책을 보면 외부성(externalities)이 존재할 때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어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을 방출하는 행위가 해로운 외부성을 만들어내는 행위의 대표적 사례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대규모의 환경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정부가 앞장서 추진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외부성으로 인한 시장의 실패를 교정해야 할 책임을 맡은 정부가 스스로 외부성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로 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자는 제의는 무지와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의 기초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터무니없는 제의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상황을 관찰해 보면 대운하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업자들은 '잿밥'에 더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운하를 건설하고 주변 지역의 개발권을 따내 돈을 벌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이것은 운하 자체의 수익성이 별로 좋지 않다는 무언의 증거일 수 있다.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처럼, 민간업자에게 운하사업이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 할지라도 그 타당성이 의심되는 터다. 주변 지역 개발권이나 수익성 보장 같은 당근으로 민간업자를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사업이 아닐까.
이 당선자 측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행정도시, 혁신도시 등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지가를 올린 참여정부를 비난해 왔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 그런 비난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관광진흥이나 지역개발 같은 잿밥에 군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대운하사업을 계기로 전국의 지가가 또 한 번 크게 뛰어오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예감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닌데, 사업에 참여할 민간업체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지가 상승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자유치에 성공했다고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이 자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민자유치는 사업의 진정한 타당성을 평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림막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민자유치에 급급해 주변 지역의 개발권을 주는 방식으로 대운하사업을 추진한다면 우리 경제에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싶다.
6. 동기의 순수성은?
많은 전문가들이 대운하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 당선자 측은 지난 대선에서의 득표율을 보고 대운하사업에 대한 지지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대단히 큰 오해다. 최소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운하사업이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이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당선자의 맹목적 추종자들만이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광범한 반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사업을 강행할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다음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하지만, 반대의견에 허심탄회하게 귀를 기울일 자세는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이 사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반대 분위기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명확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이 과연 어떤 생각에서 사업 추진의 의욕에 불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 두고두고 이득을 가져다줄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 순수한 열정에서 그런 태도가 나왔을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나 개인적으로 이런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보지만, 설사 이와 같은 동기가 밑에 깔려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금 취하고 있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사업이 가져올 진정한 편익과 비용을 계산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점을 자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일이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온 사례가 너무나도 많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당선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밀어붙이고 있을 가능성이다. 정치인으로서 한번 공약한 것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이라 해서 반드시 지키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난 대선 결과가 대운하사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에 정치적 운명을 거는 것은 이 당선자가 내걸고 있는 실용주의와도 정면으로 상반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단기적 경기부양이라든가 지역민심을 얻으려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깔려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당선자 측에서는 대운하사업을 통해 수십만 명에 이르는 고용창출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있는 고용창출 효과 중 절반을 넘는 부분이 공사진행 단계에서 창출되는 한시적 성격을 갖고 있다. 막대한 공사비를 풀어 경제가 일시적으로 흥청거리고 고용이 창출되는 듯이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이것은 자신들이 말하는 진정한 '경제 살리기'가 될 수 없다.
또한, 운하 건설로 인해 개발이 될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일반의 예상과 달리, 여론조사에서 사업에 대한 지지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불순한 동기가 아닐 수 없다. 지역개발이 촉진된다는 것 그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개발 열기가 지나쳐 투기붐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우리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다.
단기적 경기부양이나 지역민심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대운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 당장 폐기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근시안적인 동기에서 추진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이득을 얻기 위해 대규모의 환경파괴나 토지투기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있는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것은 바로 이런 어리석은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7. 맺음말
대운하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농담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경인운하사업도 중도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국토를 세로로 질러가는 운하를 판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겠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조차 당선이 되면 운하를 파겠다는 말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리라고 기대한 경우가 많았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당선이 되자마자 당장에라도 땅을 파기 시작할 듯한 태도로 나오고 있으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당선자 측이 대운하사업과 관련해 계속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불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일종의 정치적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 도박의 승산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운하의 건설과정에서는 물론 건설된 후의 운영과정에서 숱한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때마다 그 사업을 강행한 정부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이에 발목을 잡혀 다른 일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질 가능성까지 있다. 이 당선자 측의 정치적 이익을 근시안적으로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걸어볼 가치가 없는 도박이라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만 채우면 무대의 뒷면으로 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남겨둔 유산은 두고두고 국민이 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 되고 만다. 특히 대운하사업처럼 국토의 지형을 크게 바꾸게 되는 사업은 긴 시간에 걸쳐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앞날에 예기치 못한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섣불리 사업에 뛰어드는 것 같은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민자유치를 통해 대운하사업을 수행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이 사업의 수행을 위해 얼마의 돈을 투입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정부의 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사업이 갑자기 바람직한 사업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다. 민간업자들은 개인적 관점에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회적으로 이득이 되느냐의 여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민간업자들이 서로 이 사업을 맡겠다고 나선다고 해서 이 사업이 우리 사회에 이득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대운하사업을 통해 환경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는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시킴으로써 그것의 건강이 증진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작다. 긴 세월에 걸쳐 자유롭게 흐르던 강줄기를 계속 자유롭게 흐르도록 놓아두는 것이 그것을 가장 잘 사랑하는 길이라는 상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지극히 사소한 경제적 이득을 위해 두고두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환경을 훼손하는 일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실제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무엇을 따로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신의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약속 어기고 말 뒤집기를 밥 먹듯 하는 정치인은 경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은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다. 당선되었다고 마음이 바뀌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정치인이 될 자격조차 없다. 국민과 정치인 사이의 신뢰관계가 대의민주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은 상식 중에서도 상식에 속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은 당선된 정치인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마지막 하나의 공약까지 모두 지키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선자가 공약을 적당히 깔아뭉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꼭 지켜야만 할 공약이 있는 반면, 지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공약도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요즈음 새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징후를 관찰해 보면 이 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표를 얻기 위해 끼워 넣은 선심성 공약, 예컨대 신용불량자 구제나 이동통신료 인하 약속을 지키겠다고 부산을 떨다가 여론의 포화를 맞고 주춤거리는 모습이 그 단적인 예다. 그 선심성 공약들은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시장주의와 상반되는 성격의 것들이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공약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점과 관련해 한층 더 염려스러운 것은 소위 '대운하사업'이라고 부르는 공약이다. 수에즈 지협이나 파나마 지협에 운하를 판다면 아무도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길쭉한 반도의 지형을 가진 나라에서 긴 쪽을 따라 운하를 판다면 그것은 정말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동안 서울과 부산을 잇는 육로, 해로가 없어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 공약으로 인해 표를 얼마나 얻었는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말해 상식을 벗어난 발상임이 틀림없다.
대운하사업이 핵심적 공약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것을 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태의 진전 여부에 따라 심각한 국론 분열까지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확한 다수의 반대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든다면 그것은 대단한 만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면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엄청난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민심에 비추어 볼 때, 대운하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그리 쉬울 것 같지 않다. 대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리 절박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국론 분열이란 도박을 하지 않고 이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적절한 구실을 붙여 차후의 과제로 미루는 모양새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면 퇴로를 마련해 놓고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스스로 퇴로를 막고 덤비는 모습을 보이니 걱정이 클 따름이다.
이 당선자와 주위 사람들이 과거에는 야당이었으니 아무 말이나 해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국정을 책임지게 된 상황에서 체면이나 사소한 이득을 위해 위험스런 도박을 감행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냉철한 자세로 돌아가 대운하사업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한다. 만약 이 일로 인해 국론 분열이란 비극이 초래된다면 앞으로 임기 내내 이 문제로 발목을 잡힐 것은 물론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다수결에 기초한 대의민주제의 문제점
무엇보다 우선, 당선된 정치인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어떤 후보가 내건 공약의 모음을 정강(plat)이라고 부르는데, 정강은 가장 많은 표를 끌어모은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 정강이 가장 성공적인 정강이 되는 것이다. 투표자가 이 정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공약을 모두 지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투표자가 어느 한 후보에게 표를 던질 때 그의 공약 전체를 완벽하게 지지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떤 공약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더 중요한 공약을 지지하기 때문에 표를 준다는 차원에서 표를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투표자들의 성향을 미리 짐작하고 가장 많은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공약의 조합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후보가 전 국민의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각 개별공약에 대한 지지도는 50% 수준을 훨씬 더 밑돌 수 있다. 그런 공약이 한, 두 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많을 수도 있다. 그와 반대로 선거에서 진 후보의 공약 중에도 지지도가 50%를 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모든 공약을 그대로 실천해도 좋다는 백지수표가 발행되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제는 대통령이 되는 데 국민 50% 이상의 지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투표율이 어떤 수준이든 간에 다른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대통령으로 뽑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 중 아주 적은 비율의 지지를 얻고서도 대통령으로 뽑힐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이 당선자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고 하지만, 투표율까지 감안해 생각해 보면 고작 전 국민의 30% 내외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그나마 이 30% 수준의 지지율이라는 것도 이 당선자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100% 흔쾌한 마음으로 표를 던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치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찍었다는 사람이 섞여 있다면 실질적인 지지율은 더 내려갈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 이런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 비율이 아주 낮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이 당선자가 내건 공약 전반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개별적인 공약의 차원으로 내려가면 국민의 지지도가 정말로 낮은 수준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거에 이겼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우리가 말한 대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각 개별 공약에 대한 지지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결과에 기초해 정책 수행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지난 선거의 결과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한 가지 점이 있다. 그것은 이 당선자의 '경제 살리기' 공약에 대한 기대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도 사회·경제·교육의 측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공약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대운하사업에 대한 기대가 미친 영향은 지극히 작았을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서의 표 쏠림현상이 대운하사업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운하사업이 이 당선자의 공약 중 국민의 지지도가 낮은 중 하나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짐작일 뿐이며, 이처럼 정확한 진상을 모르는 것은 이 당선자 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이 대운하사업의 즉각적인 포기는 아니다. 국민의 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도록 노력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이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적 승인이 이미 난 것이라도 되는 듯한 언행을 보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다.
3. 경제적 타당성 평가의 문제
요즈음 언론에서 대운하사업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이 당선자 측이 선거 전에 작성한 평가보고서에 주로 기초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후보의 캠프가 선전용으로 만든 평가보고서가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으로 평가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평가보고서가 대운하사업 관련 찬반논쟁의 기초로 사용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당선자 측의 평가에 따르면 대운하사업에서 기대되는 편익이 소요 비용의 2.3배에 이른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땅을 파기 시작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수익성이 좋은 공공사업을 즉각 시작하지 않는 것은 범죄적 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이렇게 좋게 나온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평가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편익을 부풀리고 비용을 줄여서 계산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대운하사업에 관한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이해관계를 갖지 않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에 평가 작업을 다시 맡겨야 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평가보고서 없이 찬반토론을 시작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선거가 모두 끝난 이 시점에서 선거용으로 작성한 보고서가 갈 곳은 휴지통밖에 없다. 지금은 생산적인 찬반토론 그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연 그 평가 결과가 얼마나 신빙성을 가질 것이냐는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과거의 굵직한 국책사업들, 예를 들어 경부고속철이나 새만금 같은 사업의 타당성 평가결과를 보면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내가 그와 같은 사업의 평가과정에 간여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정부가 원하는 사업이면 반드시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analysis)이라는 것은 그다지 과학적인 분석방법이 아니다. 편익과 비용을 제 맘대로 조작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수법을 쓴다면 모를까 교묘한 방법으로 편익과 비용을 조작하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쉽게 잡아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업이 타당성을 갖는다는 결론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예를 들어 경부고속철사업의 경우, 나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그 사업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업의 심의과정에 참여할 때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테니 제발 심의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첫 번째 회의에서부터 정부가 그 사업의 추진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점은 번번이 묵살되었고, 모든 것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적자투성이 경부고속철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는 왜곡 평가의 정도가 그보다 한층 더 심했다. 정부가 주도해 작성한 평가보고서는 수많은 명백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곡 평가에 사용되는 수법의 전형적 사례로 교과서에 실릴 만한 것들도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그 타당성 평가가 적합한 것이라고 최종적인 판결을 내렸다. 불행하게도 비용-편익분석을 둘러싼 싸움은 누가 진리에 가까이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힘이 세느냐에 의해서 그 승부가 결정된다.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겉으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내막에서 평가 결과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경부고속철사업이나 새만금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벌써부터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평가보고서의 망령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수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4. 대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어떻든 간에, 나 자신은 이 사업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대운하를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데 있다. 과거에는 산을 깨부수고 물길을 돌려 국토를 개조하겠다고 난리법석을 치면서 그것이 바로 경제개발이라고 떠들어대던 적이 있었다. 이렇다할 공장 몇 개도 변변히 없던 나라에서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하천의 물길을 똑바로 만들고 시멘트 둑을 쌓아 놓는 것이 개발이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여기저기에 인공시설물을 만들어 놓고 이제는 여기까지 문명의 손길이 뻗치게 되었다고 자축하던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상태를 파괴하는 것이 바로 개발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고가도로까지 설치한 장면을 찍은 사진을 서울의 발전상으로 선전하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던 것에서 보존의 대상으로 보는 것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자연은 원래의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새로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버리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당선자 자신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킴으로써 시민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는 사실이 바로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입증해 주고 있다.
멀쩡한 강에 갑문을 만들고 멀쩡한 산에 수로 터널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강은 자연 그대로 흐르게 놓아둘 때 가장 건강할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홍수 조절이나 용수 확보를 위해 부득이 손을 댈 수는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건강한 자연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대운하사업이 구상하고 있는 정도의 대규모 개조가 주변의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다. 과거라면 운하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만을 따져 그것을 건설할 지의 여부를 결정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적 이득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당선자 측의 평가보고서에서 편익-비용비율이 2.3이나 되는 높은 수치로 계산되어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고 본다. 이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예기치 못한 악영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그런 장밋빛 전망을 할 수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과거 개발연대에서는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이런저런 사업을 밀어붙인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개발에서 보존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지금 그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접근방법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대운하사업을 통해 환경이 더욱 개선될 것이라는 이 당선자 측의 주장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에서 가장 건강할 수 있다.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운하사업이 하수도 처리장을 건설하는 일이라도 되는 듯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없던 물길을 새로 만들고 멀쩡한 산을 깎아내리는 일일 뿐 아니라, 그 주변에 건물이나 도로 등 수없이 많은 인공구조물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대운하사업이 주변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은 새로운 여건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할 것이다. 교란된 생태계가 새로운 균형을 이루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언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기상이변 같은 예기치 못한 사태와 결합하는 경우에는 주변 생태계에 미증유의 대재앙이 닥칠 가능성까지 있다. 강 밑바닥을 준설하고 육상 물동량을 운하로 돌림으로써 환경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대운하를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제는 경제의 무게 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벌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지식의 창출과 유통이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반도체처럼 작고 가벼운 물건의 생산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물자의 유통이 거북이걸음으로 늘어나는 반면, 지식과 정보의 유통은 토끼걸음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물류 그 자체의 성격도 비용보다 시간이 점차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무역의 경우에도 운임이 해상운송보다 몇 배나 비싼 항공운송 쪽을 선택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측이 아무리 애를 써도 감출 수 없는 하나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운하를 통한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 수단에 의한 소요시간보다 엄청나게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업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운하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물류 촉진을 위해 운하를 판다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운하를 파는 토목사업은 그 자체로 구시대의 냄새를 풍긴다. 경제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역점 사업 중의 하나로 이런 구시대적인 토목사업을 들고나오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경제구조 선진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착수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서 운하 파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5. 민자유치의 허구성
대운하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이 당선자 측에서는 '민자유치'라는 편법으로 예봉을 피해가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부문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운하사업에 참여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부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전부 민간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니 국민이 염려할 바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보수언론도 여기에 가세해 대운하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궁극적 평가는 민자유치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가소로운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의 '경' 자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운하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그것이 가져올 환경피해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환경피해가 발생해도 자신의 수익성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업으로 인해 아무리 큰 환경피해가 날 것이 예상된다 해도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의 결정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민간업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그 사업이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간업자가 대운하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할 때는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만을 고려한다. 아무리 사회적 의식이 높은 기업이라도 자신이 직접 지불하지 않는 비용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으로 인해 환경피해가 발생한다면 누군가는 이와 관련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관점에서 본 비용은 민간업자가 인식하는 비용보다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대운하사업이 공공사업의 성격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사회적 관점에서 파악한 비용에 기초해 그 사업의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간업자가 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들의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득이 예상된다는 것을 뜻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사업을 수행할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면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운하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은 그 본질상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격차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로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방법이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수도권의 상수원으로 쓰는 저수지를 유료 낚시터로 개발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하자. 이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문제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100% 민자사업으로 진행시키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업자는 낚시터로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만 부담하면 되고 수질오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 후 이 사업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민간업자가 그 낚시터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것이 분명한데, 이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업이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대운하사업과 지금 예로 든 유료 낚시터 사업이 그 기본골격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갖지 않는 쌍둥이 사업이라는 점에 주의하기 바란다. 유료 낚시터 사업의 민자유치가 갖는 의미를 대운하사업의 민자유치에 대입해 보면 내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사실은 그 저수지를 유료 낚시터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민간업자가 먼저 냈다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말려야 한다. 정부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개인적인 이익만을 따지는 민간업자의 행동을 감시하고 규제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원론 책을 보면 외부성(externalities)이 존재할 때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어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을 방출하는 행위가 해로운 외부성을 만들어내는 행위의 대표적 사례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대규모의 환경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정부가 앞장서 추진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외부성으로 인한 시장의 실패를 교정해야 할 책임을 맡은 정부가 스스로 외부성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민간업자의 참여 여부로 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자는 제의는 무지와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의 기초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터무니없는 제의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상황을 관찰해 보면 대운하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업자들은 '잿밥'에 더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운하를 건설하고 주변 지역의 개발권을 따내 돈을 벌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이것은 운하 자체의 수익성이 별로 좋지 않다는 무언의 증거일 수 있다.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처럼, 민간업자에게 운하사업이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 할지라도 그 타당성이 의심되는 터다. 주변 지역 개발권이나 수익성 보장 같은 당근으로 민간업자를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사업이 아닐까.
이 당선자 측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행정도시, 혁신도시 등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지가를 올린 참여정부를 비난해 왔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 그런 비난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관광진흥이나 지역개발 같은 잿밥에 군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대운하사업을 계기로 전국의 지가가 또 한 번 크게 뛰어오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예감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닌데, 사업에 참여할 민간업체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지가 상승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자유치에 성공했다고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이 자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민자유치는 사업의 진정한 타당성을 평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림막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민자유치에 급급해 주변 지역의 개발권을 주는 방식으로 대운하사업을 추진한다면 우리 경제에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싶다.
6. 동기의 순수성은?
많은 전문가들이 대운하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 당선자 측은 지난 대선에서의 득표율을 보고 대운하사업에 대한 지지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대단히 큰 오해다. 최소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운하사업이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이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당선자의 맹목적 추종자들만이 대운하사업의 타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광범한 반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사업을 강행할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다음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하지만, 반대의견에 허심탄회하게 귀를 기울일 자세는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이 사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반대 분위기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명확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이 과연 어떤 생각에서 사업 추진의 의욕에 불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 두고두고 이득을 가져다줄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 순수한 열정에서 그런 태도가 나왔을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나 개인적으로 이런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보지만, 설사 이와 같은 동기가 밑에 깔려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금 취하고 있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사업이 가져올 진정한 편익과 비용을 계산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점을 자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일이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온 사례가 너무나도 많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당선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밀어붙이고 있을 가능성이다. 정치인으로서 한번 공약한 것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이라 해서 반드시 지키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난 대선 결과가 대운하사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에 정치적 운명을 거는 것은 이 당선자가 내걸고 있는 실용주의와도 정면으로 상반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단기적 경기부양이라든가 지역민심을 얻으려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깔려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당선자 측에서는 대운하사업을 통해 수십만 명에 이르는 고용창출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있는 고용창출 효과 중 절반을 넘는 부분이 공사진행 단계에서 창출되는 한시적 성격을 갖고 있다. 막대한 공사비를 풀어 경제가 일시적으로 흥청거리고 고용이 창출되는 듯이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이것은 자신들이 말하는 진정한 '경제 살리기'가 될 수 없다.
또한, 운하 건설로 인해 개발이 될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일반의 예상과 달리, 여론조사에서 사업에 대한 지지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불순한 동기가 아닐 수 없다. 지역개발이 촉진된다는 것 그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개발 열기가 지나쳐 투기붐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우리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다.
단기적 경기부양이나 지역민심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대운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 당장 폐기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근시안적인 동기에서 추진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이득을 얻기 위해 대규모의 환경파괴나 토지투기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있는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것은 바로 이런 어리석은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7. 맺음말
대운하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농담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경인운하사업도 중도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국토를 세로로 질러가는 운하를 판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겠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조차 당선이 되면 운하를 파겠다는 말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리라고 기대한 경우가 많았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당선이 되자마자 당장에라도 땅을 파기 시작할 듯한 태도로 나오고 있으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당선자 측이 대운하사업과 관련해 계속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불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일종의 정치적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 도박의 승산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운하의 건설과정에서는 물론 건설된 후의 운영과정에서 숱한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때마다 그 사업을 강행한 정부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이에 발목을 잡혀 다른 일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질 가능성까지 있다. 이 당선자 측의 정치적 이익을 근시안적으로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걸어볼 가치가 없는 도박이라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만 채우면 무대의 뒷면으로 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남겨둔 유산은 두고두고 국민이 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 되고 만다. 특히 대운하사업처럼 국토의 지형을 크게 바꾸게 되는 사업은 긴 시간에 걸쳐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앞날에 예기치 못한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섣불리 사업에 뛰어드는 것 같은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민자유치를 통해 대운하사업을 수행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이 사업의 수행을 위해 얼마의 돈을 투입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정부의 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사업이 갑자기 바람직한 사업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다. 민간업자들은 개인적 관점에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회적으로 이득이 되느냐의 여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민간업자들이 서로 이 사업을 맡겠다고 나선다고 해서 이 사업이 우리 사회에 이득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대운하사업을 통해 환경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는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시킴으로써 그것의 건강이 증진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작다. 긴 세월에 걸쳐 자유롭게 흐르던 강줄기를 계속 자유롭게 흐르도록 놓아두는 것이 그것을 가장 잘 사랑하는 길이라는 상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지극히 사소한 경제적 이득을 위해 두고두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환경을 훼손하는 일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실제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무엇을 따로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과학과 기술을 쪼개는 어리석음
[동아광장/정재승]과학과 기술을 쪼개는 어리석음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가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중복 업무를 피하고 효율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부조직을 개편하겠다고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공무원 조직의 크기를 줄이기 힘든 상황에서 부처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개편하다 보니, 실상은 ‘조직의 살 빼기’가 아니라 ‘부처 간 힘 빼기’가 돼 버렸다.
권력을 잃기 두려운 부처들은 부처 이름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부처 산하의 이해 집단들도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열심히 설파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부처 통폐합에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원칙과 철학’이 필요하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기술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합쳐져 ‘교육과학부’로 통합돼 과학연구개발 지원과 정부출연연구소 업무를 담당하고, 기술 부문은 따로 떼어 산업자원부에 흡수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과학기술부 업무를 과학과 기술 부문으로 쪼개 다른 부서로 넘기고 과기부는 폐지하겠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2001년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을 ‘문부과학성’으로 통합한 것과 비슷하다. 이 통폐합 안은 인수위가 ‘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科技部분리, 융합시대 역행
과기부 폐지안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과 기술을 쪼개어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꾼다는 데 있다. 이는 통합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21세기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은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과학과 기술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기초적인 나노 과학적 연구 성과는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적 가치를 지니며, 로봇공학의 핵심기술들은 신경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이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과학이 기술의 최전선과 맞닿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융합의 시대에 과학기술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20세기 식으로 구분지어진 과학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 분야별로 ‘과학에서 공학까지’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교육부와 산자부로의 과기부 업무 흡수 안은 효율적인 연구지원 시스템을 저해하는 ‘20세기형 조직 개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부총리제는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국가혁신체제(NIS) 진단 보고서를 통해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으로서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조정능력 향상, 사업 간 중복 방지, 정책 간 협력 증대 및 정책 효율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도 우리를 모델 삼아 과학기술부를 신설해 과학과 공학에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한 바 있다.
교육부와 과기부의 통합안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인문사회과학의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데 있다.
인수위에 참여하는 많은 사회과학분야 교수는 ‘교육부 폐지’ 안을 막기 위해 ‘과기부와의 통합’ 안을 만들었겠지만, 결국 신설되는 교육과학부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과학기술 중심으로만의 교육 개혁’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통합한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이공계 대학 방식의 대학 개혁을 전 분야에 걸쳐 주도하고 있고, 중고교 교육도 수학, 과학 교육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인문사회과학의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교육과학부, 인문학 등한시 우려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은 나름의 전통과 서로 다른 호흡으로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 21세기 융합사회에서 우리가 길러야 할 인재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모두에 균형 잡힌 창조적 리더이지,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절름발이 지식인’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이공계는 위기요, 인문학은 절망이다.
이공계에 절망을 던져 주고 인문학에 죽음을 안겨 줄 ‘과기부 폐지안’에 대해 인수위 및 국회의 재고가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이 융합하는 시대에 걸맞은 ‘21세기형 정부조직’이 절실하다.
정재승 객원논설위원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가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중복 업무를 피하고 효율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부조직을 개편하겠다고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공무원 조직의 크기를 줄이기 힘든 상황에서 부처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개편하다 보니, 실상은 ‘조직의 살 빼기’가 아니라 ‘부처 간 힘 빼기’가 돼 버렸다.
권력을 잃기 두려운 부처들은 부처 이름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부처 산하의 이해 집단들도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열심히 설파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부처 통폐합에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원칙과 철학’이 필요하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기술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합쳐져 ‘교육과학부’로 통합돼 과학연구개발 지원과 정부출연연구소 업무를 담당하고, 기술 부문은 따로 떼어 산업자원부에 흡수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과학기술부 업무를 과학과 기술 부문으로 쪼개 다른 부서로 넘기고 과기부는 폐지하겠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2001년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을 ‘문부과학성’으로 통합한 것과 비슷하다. 이 통폐합 안은 인수위가 ‘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科技部분리, 융합시대 역행
과기부 폐지안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과 기술을 쪼개어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꾼다는 데 있다. 이는 통합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21세기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은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과학과 기술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기초적인 나노 과학적 연구 성과는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적 가치를 지니며, 로봇공학의 핵심기술들은 신경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이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과학이 기술의 최전선과 맞닿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융합의 시대에 과학기술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20세기 식으로 구분지어진 과학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 분야별로 ‘과학에서 공학까지’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교육부와 산자부로의 과기부 업무 흡수 안은 효율적인 연구지원 시스템을 저해하는 ‘20세기형 조직 개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부총리제는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국가혁신체제(NIS) 진단 보고서를 통해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으로서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조정능력 향상, 사업 간 중복 방지, 정책 간 협력 증대 및 정책 효율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도 우리를 모델 삼아 과학기술부를 신설해 과학과 공학에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한 바 있다.
교육부와 과기부의 통합안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인문사회과학의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데 있다.
인수위에 참여하는 많은 사회과학분야 교수는 ‘교육부 폐지’ 안을 막기 위해 ‘과기부와의 통합’ 안을 만들었겠지만, 결국 신설되는 교육과학부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과학기술 중심으로만의 교육 개혁’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통합한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이공계 대학 방식의 대학 개혁을 전 분야에 걸쳐 주도하고 있고, 중고교 교육도 수학, 과학 교육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인문사회과학의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교육과학부, 인문학 등한시 우려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은 나름의 전통과 서로 다른 호흡으로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 21세기 융합사회에서 우리가 길러야 할 인재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모두에 균형 잡힌 창조적 리더이지,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절름발이 지식인’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이공계는 위기요, 인문학은 절망이다.
이공계에 절망을 던져 주고 인문학에 죽음을 안겨 줄 ‘과기부 폐지안’에 대해 인수위 및 국회의 재고가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이 융합하는 시대에 걸맞은 ‘21세기형 정부조직’이 절실하다.
정재승 객원논설위원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싸우면서 노무현 닮아 가는 이명박 정부 - 박정훈
MB정부 국정이 파탄 직전까지 몰린 것은 정권의 탄생 이유를 잊었기 때문이다. MB정권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했다. 노 정부의 실정(失政)에 신물 난 국민들이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라고 뽑아 주었다. 그것을 아는 MB정부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와 거꾸로만 하면 성공한다"고 장담하곤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거꾸로는커녕 MB정부 하는 일들이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는 전임자를 빼다 박듯 닮았다. 코드 인사며 과격한 시장 개입, 아마추어 국정과 포퓰리즘까지 MB정부의 4개월은 노 정부 5년의 실책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하다. 어처구니없게도 '싸우면서 닮아가는'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를테면 인사다. 노무현 정권은 측근·코드 인사로 5년 내내 비판받았지만 자기 사람 챙기기로 치면 MB정부도 지지 않는다. 내각·비서진이며 공기업까지 권력 핵심과 끈이 닿지 못하면 웬만한 자리의 후보에도 끼지 못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MB정부는 온갖 요직마다 자기편 사람들을 앉히더니 드디어 공천 탈락한 정치인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안택수 전 의원을 신호탄으로 한나라당의 낙선·낙천 부대들이 줄줄이 공기업에 투하되고 있다.
원래 '낙선자 낙하산'은 노 정부가 원조(元祖)격이다. 선거에 떨어진 자기편 사람을 번듯한 감투로 대접하던 노 정부의 '미덕'을 MB정부도 이어받았다.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그렇게도 공격했던 '코드·연줄·보은(報恩) 인사'를 MB정부가 똑같이 반복하고 있으니 정말 아이로니컬하다.
인사뿐일까. 전임자가 그랬듯이 MB정부 역시 시장(市場)과 싸우며 삐걱댄다. MB정부는 입으로는 '시장 프렌들리(친화적)'를 외치면서 행동은 반(反)시장적으로 하는 이상한 정부다. 노무현 정부가 세금 폭탄으로 부동산시장과 격투했다면 MB정부는 달러 폭탄을 난사하며 외환시장과 싸우고 있다.
닮은꼴의 포퓰리즘(대중영합)은 또 어떤가. 복지·증세 등에서 포퓰리즘을 발산했던 전임자처럼 MB정부도 갈수록 대중의 단기적 요구에 영합하고 있다. 1380만명에게 3조원의 '현금 봉투'를 나눠주겠다는 고유가 지원책은 포퓰리즘의 극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소모성 현금보다 성장·일자리의 기반을 짓는 생산적 용도에 쓰는 게 훨씬 MB정부다웠을 것이다.
MB정부는 또한 '아마추어'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게 됐다. 프로 집단임을 자임하던 것과 딴판으로 미국산 쇠고기사태 등에서 형편없는 대응 실력과 정무적 판단 미스를 드러냈다.
이제 국민들은 큰일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또 어떤 범실을 저지를까 조마조마한 심정이 돼버렸다. MB정부가 사는 길은 '노무현증후군'과 결별하는 것뿐인데 똑같은 실패 코스를 질주해가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나마 지금 단계에서 차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성장의 패러다임일 것이다. 국민들은 대선 때 이 대통령이 웅변했던 '고(高)성장의 꿈'을 떠올리며, 언제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마술을 보여줄지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로 성장 노선의 포기를 강요당하면서 최후의 차별화 포인트마저 잃어버렸다. 이달 초 정부가 '7% 성장' 목표의 사실상 폐기를 선언한 순간 MB노믹스(MB정부의 경제 운용)는 정체성 자체가 모호해져 버렸다. 국제 환경도 나빴지만 미숙한 경제 운용 때문에 MB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컸다.
이제 국민들은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성장도 못 하고, 일자리 창출과 공기업 개혁도 제대로 못 해내는 MB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이 준비돼 있다면 MB정부엔 아직 성공의 찬스가 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거꾸로는커녕 MB정부 하는 일들이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는 전임자를 빼다 박듯 닮았다. 코드 인사며 과격한 시장 개입, 아마추어 국정과 포퓰리즘까지 MB정부의 4개월은 노 정부 5년의 실책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하다. 어처구니없게도 '싸우면서 닮아가는'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를테면 인사다. 노무현 정권은 측근·코드 인사로 5년 내내 비판받았지만 자기 사람 챙기기로 치면 MB정부도 지지 않는다. 내각·비서진이며 공기업까지 권력 핵심과 끈이 닿지 못하면 웬만한 자리의 후보에도 끼지 못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MB정부는 온갖 요직마다 자기편 사람들을 앉히더니 드디어 공천 탈락한 정치인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안택수 전 의원을 신호탄으로 한나라당의 낙선·낙천 부대들이 줄줄이 공기업에 투하되고 있다.
원래 '낙선자 낙하산'은 노 정부가 원조(元祖)격이다. 선거에 떨어진 자기편 사람을 번듯한 감투로 대접하던 노 정부의 '미덕'을 MB정부도 이어받았다.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그렇게도 공격했던 '코드·연줄·보은(報恩) 인사'를 MB정부가 똑같이 반복하고 있으니 정말 아이로니컬하다.
인사뿐일까. 전임자가 그랬듯이 MB정부 역시 시장(市場)과 싸우며 삐걱댄다. MB정부는 입으로는 '시장 프렌들리(친화적)'를 외치면서 행동은 반(反)시장적으로 하는 이상한 정부다. 노무현 정부가 세금 폭탄으로 부동산시장과 격투했다면 MB정부는 달러 폭탄을 난사하며 외환시장과 싸우고 있다.
닮은꼴의 포퓰리즘(대중영합)은 또 어떤가. 복지·증세 등에서 포퓰리즘을 발산했던 전임자처럼 MB정부도 갈수록 대중의 단기적 요구에 영합하고 있다. 1380만명에게 3조원의 '현금 봉투'를 나눠주겠다는 고유가 지원책은 포퓰리즘의 극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소모성 현금보다 성장·일자리의 기반을 짓는 생산적 용도에 쓰는 게 훨씬 MB정부다웠을 것이다.
MB정부는 또한 '아마추어'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게 됐다. 프로 집단임을 자임하던 것과 딴판으로 미국산 쇠고기사태 등에서 형편없는 대응 실력과 정무적 판단 미스를 드러냈다.
이제 국민들은 큰일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또 어떤 범실을 저지를까 조마조마한 심정이 돼버렸다. MB정부가 사는 길은 '노무현증후군'과 결별하는 것뿐인데 똑같은 실패 코스를 질주해가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나마 지금 단계에서 차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성장의 패러다임일 것이다. 국민들은 대선 때 이 대통령이 웅변했던 '고(高)성장의 꿈'을 떠올리며, 언제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마술을 보여줄지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로 성장 노선의 포기를 강요당하면서 최후의 차별화 포인트마저 잃어버렸다. 이달 초 정부가 '7% 성장' 목표의 사실상 폐기를 선언한 순간 MB노믹스(MB정부의 경제 운용)는 정체성 자체가 모호해져 버렸다. 국제 환경도 나빴지만 미숙한 경제 운용 때문에 MB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컸다.
이제 국민들은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성장도 못 하고, 일자리 창출과 공기업 개혁도 제대로 못 해내는 MB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이 준비돼 있다면 MB정부엔 아직 성공의 찬스가 있다.
2008년 8월 3일 일요일
통역이 필요 없는 대통령
[동서남북] 통역이 필요없는 대통령........ 홍준호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전국 세무서장과 경찰 지휘관을 상대로 잇따라 특강을 했다. 그 강연 내용을 읽고, 또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동영상을 통해 육성(肉聲)을 들으면서 느낀 소감은 두 가지다. 노 대통령의 꿈은 참 큰 것 같다. 그러나 그 꿈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특강의 주제는 ‘국가개조론’, 제목은 ‘대한민국의 팔자를 고치자’였다. 좋은 얘기이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물었다. “왜, 마(魔)의 1만달러대를 8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는가? 모든 영역에서 그렇게 개혁을 부르짖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가?”
‘변화와 개혁’의 강을 건넌 지난 두 정권을 되돌아보면서 그 선배들이 닦은 토대 위에서 같은 개혁을 부르짖으며 집권한 노 대통령이 이런 테마를 화두로 던진 것은 신선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는 ‘8년째의 정체’를 극복하고, 2만달러시대로 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그 신선함을 특강 내내 유지했다면 뉴스는 온통 2만달러시대로 뒤덮였을 것이다. 또 지금쯤엔 그 목적지로 가기 위한 방략과 과제들을 둘러싼 논쟁이 ‘공무원 노사모’를 만들려는 계산이 있느니 아니니 하는 소모전을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국가적 정체의 원인을 따지고 대책을 말하면서 돌연 ‘형이상학적’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 동안 근본 문제에 손을 대지 못했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 양식이다. 그 행동 양식은 사고 방식에 의해 지배된다. 고로 문화개혁을 해야겠다. 이게 국가 개조다. 그 방향을 잡아서 시스템을 설정해놓겠다’, 대략 이런 요지였다. 2만달러에서 국가 개조, 문화개혁, 시스템으로 단숨에 몇 단계를 뛰어넘는 그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2만달러는 까마득히 잊게 된다. 게다가 그의 결론은 정부 내에 자신과 ‘정신적 맥락을 함께하는 공식·비공식의 개혁주체조직’을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연결됐다. ‘2만달러’는 졸지에 온데간데없어지고 ‘공식·비공식 조직’만 남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지도자의 말은 알기 쉽고 메시지는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국론을 모으고 힘을 결집시킬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특강이 공무원 내 개혁조직 논란으로 비화되자 “딴죽을 거는 것 같다”고, 또 언론을 탓했다. 세력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업무를 혁신하기 위해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 것일 뿐인데, 마치 문화혁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언론이 부풀린다는 불만이었다.
이런 해명대로라면 앞으로 국민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할지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해설자나 통역자를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통역을 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평소 코드가 잘 맞는다는 인사들도 헷갈린 모양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조차 “대통령이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만달러와 개혁주체조직 간의 거리는 그만큼 멀고, 돌고 돌아서 온 만큼 인과관계도 불분명하다.
노 대통령의 말에는 그 동안에도 거품이 많았다. 새 정부의 대북 평화 번영정책이란 것이 이전의 햇볕정책을 승계한 것인지 아닌지, 새만금사업은 계속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크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신당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다는 것인지 아닌지, 수사(修辭)와 말들은 요란했지만 정작 내용은 애매모호했다.
대통령이 통역이 필요없는 말을 써야 혼란이 줄어든다.
(홍준호 정치부장 jhhong@chosun.com )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전국 세무서장과 경찰 지휘관을 상대로 잇따라 특강을 했다. 그 강연 내용을 읽고, 또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동영상을 통해 육성(肉聲)을 들으면서 느낀 소감은 두 가지다. 노 대통령의 꿈은 참 큰 것 같다. 그러나 그 꿈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특강의 주제는 ‘국가개조론’, 제목은 ‘대한민국의 팔자를 고치자’였다. 좋은 얘기이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물었다. “왜, 마(魔)의 1만달러대를 8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는가? 모든 영역에서 그렇게 개혁을 부르짖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가?”
‘변화와 개혁’의 강을 건넌 지난 두 정권을 되돌아보면서 그 선배들이 닦은 토대 위에서 같은 개혁을 부르짖으며 집권한 노 대통령이 이런 테마를 화두로 던진 것은 신선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는 ‘8년째의 정체’를 극복하고, 2만달러시대로 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그 신선함을 특강 내내 유지했다면 뉴스는 온통 2만달러시대로 뒤덮였을 것이다. 또 지금쯤엔 그 목적지로 가기 위한 방략과 과제들을 둘러싼 논쟁이 ‘공무원 노사모’를 만들려는 계산이 있느니 아니니 하는 소모전을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국가적 정체의 원인을 따지고 대책을 말하면서 돌연 ‘형이상학적’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 동안 근본 문제에 손을 대지 못했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 양식이다. 그 행동 양식은 사고 방식에 의해 지배된다. 고로 문화개혁을 해야겠다. 이게 국가 개조다. 그 방향을 잡아서 시스템을 설정해놓겠다’, 대략 이런 요지였다. 2만달러에서 국가 개조, 문화개혁, 시스템으로 단숨에 몇 단계를 뛰어넘는 그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2만달러는 까마득히 잊게 된다. 게다가 그의 결론은 정부 내에 자신과 ‘정신적 맥락을 함께하는 공식·비공식의 개혁주체조직’을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연결됐다. ‘2만달러’는 졸지에 온데간데없어지고 ‘공식·비공식 조직’만 남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지도자의 말은 알기 쉽고 메시지는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국론을 모으고 힘을 결집시킬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특강이 공무원 내 개혁조직 논란으로 비화되자 “딴죽을 거는 것 같다”고, 또 언론을 탓했다. 세력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업무를 혁신하기 위해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 것일 뿐인데, 마치 문화혁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언론이 부풀린다는 불만이었다.
이런 해명대로라면 앞으로 국민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할지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해설자나 통역자를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통역을 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평소 코드가 잘 맞는다는 인사들도 헷갈린 모양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조차 “대통령이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만달러와 개혁주체조직 간의 거리는 그만큼 멀고, 돌고 돌아서 온 만큼 인과관계도 불분명하다.
노 대통령의 말에는 그 동안에도 거품이 많았다. 새 정부의 대북 평화 번영정책이란 것이 이전의 햇볕정책을 승계한 것인지 아닌지, 새만금사업은 계속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크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신당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다는 것인지 아닌지, 수사(修辭)와 말들은 요란했지만 정작 내용은 애매모호했다.
대통령이 통역이 필요없는 말을 써야 혼란이 줄어든다.
(홍준호 정치부장 jhhong@chosun.com )
지식인의 권력 포트폴리오
[아침논단] 지식인의 ‘권력 포트폴리오’ ....... 전상인
지식 없는 권력은 맹목적이다. ‘알아야 면장’이라 하듯이 무식(無識)이 세상을 지배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한편, 권력 없는 지식은 공허하다. 아무리 ‘아는 것이 힘’이라 하지만 지식 스스로가 실체적 권력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겸비한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가 이른바 ‘철인왕(哲人王)’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권력과 지식이란 대개 따로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 함께 만나고 사정에 따라 서로 헤어지곤 하는 것이 지식과 권력의 관계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특정 지식인 그룹의 부침이 매번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노무현 정권의 출범 전후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참여정부’의 등장에 공로를 세웠고 그들 가운데 상당한 숫자는 정부 안팎에서 집권세력의 실세 역할을 하고 있다. 지식과 권력 간의 상호의존성을 감안하면 이 자체는 놀라운 내용도 아니고 비판할 사안도 아니다.
이들 외에도 적지 않은 숫자의 ‘스타’ 지식인들이 지난 겨울꼬리와 봄머리 무렵 노무현 정부의 역사적 발진(發進)에 앞다투어 동참했다. 그런데 최근 그들의 입장에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자신들이 했던 말이나 썼던 글과는 너무나 다르게 노무현 정부로부터 갑자기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친노(親盧) 지식인의 이반(離反) 사태는 무엇보다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막 지난 시점에 나타난 국민적 지지도 급락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한 것이라기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현실 참여 방식에 연관된 문제가 아닌지 싶다. 먼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특정 권력집단에 거는 부류의 지식인이 있다. 이른바 대박과 쪽박 사이를 오가는 ‘올인(all-in)식’ 투자이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종류의 지식인들은 자산을 여러 곳에 나누어 투자하는 안정적 방식을 취한다. 곧,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비하여 손실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계산법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포트폴리오(portfolio)’ 지식인이다. 한때 노 정권에 밀착했다가 지금쯤 이탈을 모색하는 행위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올인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략에 해당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포트폴리오 지식인이 너무나 많다. 온갖 사회적 기득권을 고수하면서 개혁적 사회운동에 가담하거나, 기존의 제도권 학문에 안주하면서 진보·좌파 학계의 ‘눈 도장’을 챙기는 일 또는 자신의 체질화된 친미(親美)적 삶이 무색하게도 강의실에만 들어가면 반미(反美)주의자로 돌변하는 것 등이 그 보기다. 마치 한꺼번에 여러 보험에 가입하듯 정치적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최선의 방책은 사회적 관계자본을 분산 투자하는 데 있다고 믿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성공 가능성에 투자했다가 행여 수익률이 떨어질까 딴 마음 먹는 일쯤은 따라서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백 번 양보하여 지식인의 포트폴리오 처신 자체는 인간적으로 있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적어도 노무현 정권에 대한 투자 전략이라면 포트폴리오 방식은 치명적이다. ‘문화혁명’을 방불케 하는 국가 개조 및 사회변혁 프로젝트가 시도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앞에서 지식과 권력의 관계는 결코 통상적 판단이나 시류적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부응하는 지식인 타입은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올인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비감한 역사의식을 자부하면서 그에 따른 시대과업 추진을 비장하게 자임하고 나선 노무현 정부인 만큼 지식인의 참여와 동조 방식 역시 결코 예사로울 수는 없다. 지식과 권력이 기왕 같이 가기로 했다면 고락(苦樂) 정도가 아니라 생사(生死)까지 함께할 각오를 지녀야 한다. 지식인에게 지조는 미덕이지만 처세(處世)는 악행(惡行)이다.
(전상인 한림대교수·사회학)
지식 없는 권력은 맹목적이다. ‘알아야 면장’이라 하듯이 무식(無識)이 세상을 지배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한편, 권력 없는 지식은 공허하다. 아무리 ‘아는 것이 힘’이라 하지만 지식 스스로가 실체적 권력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겸비한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가 이른바 ‘철인왕(哲人王)’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권력과 지식이란 대개 따로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 함께 만나고 사정에 따라 서로 헤어지곤 하는 것이 지식과 권력의 관계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특정 지식인 그룹의 부침이 매번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노무현 정권의 출범 전후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참여정부’의 등장에 공로를 세웠고 그들 가운데 상당한 숫자는 정부 안팎에서 집권세력의 실세 역할을 하고 있다. 지식과 권력 간의 상호의존성을 감안하면 이 자체는 놀라운 내용도 아니고 비판할 사안도 아니다.
이들 외에도 적지 않은 숫자의 ‘스타’ 지식인들이 지난 겨울꼬리와 봄머리 무렵 노무현 정부의 역사적 발진(發進)에 앞다투어 동참했다. 그런데 최근 그들의 입장에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자신들이 했던 말이나 썼던 글과는 너무나 다르게 노무현 정부로부터 갑자기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친노(親盧) 지식인의 이반(離反) 사태는 무엇보다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막 지난 시점에 나타난 국민적 지지도 급락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한 것이라기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현실 참여 방식에 연관된 문제가 아닌지 싶다. 먼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특정 권력집단에 거는 부류의 지식인이 있다. 이른바 대박과 쪽박 사이를 오가는 ‘올인(all-in)식’ 투자이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종류의 지식인들은 자산을 여러 곳에 나누어 투자하는 안정적 방식을 취한다. 곧,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비하여 손실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계산법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포트폴리오(portfolio)’ 지식인이다. 한때 노 정권에 밀착했다가 지금쯤 이탈을 모색하는 행위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올인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략에 해당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포트폴리오 지식인이 너무나 많다. 온갖 사회적 기득권을 고수하면서 개혁적 사회운동에 가담하거나, 기존의 제도권 학문에 안주하면서 진보·좌파 학계의 ‘눈 도장’을 챙기는 일 또는 자신의 체질화된 친미(親美)적 삶이 무색하게도 강의실에만 들어가면 반미(反美)주의자로 돌변하는 것 등이 그 보기다. 마치 한꺼번에 여러 보험에 가입하듯 정치적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최선의 방책은 사회적 관계자본을 분산 투자하는 데 있다고 믿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성공 가능성에 투자했다가 행여 수익률이 떨어질까 딴 마음 먹는 일쯤은 따라서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백 번 양보하여 지식인의 포트폴리오 처신 자체는 인간적으로 있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적어도 노무현 정권에 대한 투자 전략이라면 포트폴리오 방식은 치명적이다. ‘문화혁명’을 방불케 하는 국가 개조 및 사회변혁 프로젝트가 시도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앞에서 지식과 권력의 관계는 결코 통상적 판단이나 시류적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부응하는 지식인 타입은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올인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비감한 역사의식을 자부하면서 그에 따른 시대과업 추진을 비장하게 자임하고 나선 노무현 정부인 만큼 지식인의 참여와 동조 방식 역시 결코 예사로울 수는 없다. 지식과 권력이 기왕 같이 가기로 했다면 고락(苦樂) 정도가 아니라 생사(生死)까지 함께할 각오를 지녀야 한다. 지식인에게 지조는 미덕이지만 처세(處世)는 악행(惡行)이다.
(전상인 한림대교수·사회학)
깽판 쳐야 들어 주는 정부
[문갑식]'깽판'쳐야 들어주는 정부
17일 밤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국노총 김성태(金星泰) 사무총장이었다. 안부 인사 나눌 겨를도 없이 그가 외쳤다. “문형, 청와대가 이래도 되는 거요. 우리를 막판까지 몰고 가네. 본때를 보여 줄 거야.” 이 말을 끝으로 뚝 끊긴 그의 음성이 남긴 여운은 한참을 갔다.
18일 아침 8시20분, 기자는 노총 강훈중(姜勳中) 홍보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웅웅거리는 소음 사이로 그도 소리쳤다. “문형, 오전 9시부터 조흥은행 파업 들어갑니다.”전화는 또 끊겼다. 불과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우려했던 대로 조흥은행 노조는 이날 아침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예정보다 1주일을 앞당긴 전격적인 집단행동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조흥은행 노조원들은 청와대에 무더기 사퇴서 전달을 시도했고 17일 오후에는 삭발식도 벌였다.
조흥은행이라는 뇌관(雷管)의 폭발은 머지않아 관련 은행의 동조 파업을 부를 것이고, 이는 다시 노총 산하 영세 기업들의‘2차 폭발’로 이어질 것이다. 기자는 이 시점에서 올해 초‘온건하고 합리적인 노동운동의 모습을 보이겠다’던 한국노총의 다짐을 떠올렸다.
노총 이남순(李南淳) 위원장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이제 노동운동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노동운동은 더 이상 사용자와 노동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어렵지만 해보겠다”고도 했다.
1개월 전 다시 이 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의 말과 표정은 바뀌어 있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하면 (청와대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 그는 조흥은행 본점에 머리띠를 매고 앉아 있다.
조흥은행 매각은 경제적 논리로만 따지면,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예고돼 왔던 것이기에 지금 화제가 된다면 근로자들의 고용승계 정도가 돼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은 당하는 사람에겐 참을 수 없는 것이지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조흥은행 직원들과 상급 단체인 노총은 예금자를 담보로 집단행동을 벌이게 됐는가. 그것은 1차로 노 대통령 스스로 이 문제에 개입해 조흥은행과 노총에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좀더 거시적으로 보면 현 정부가 집권 이후‘목소리 크고 집단행동에 나서면 무엇이든 수용해준다’는 이상한 전통을 만들어 준 게 원인이다.
그 사례는 두산중공업, 철도 노사 분규,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 외에도 무수히 많다.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서‘깽판 치면’선명(鮮明)이요, 합리를 주장하면 어용(御用)이 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더구나 현 정부, 특히 청와대 주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민주노총 출신이 많다. 민노총 출신이 권력 주변에 진입한 게 이번파업의 원인은 아니겠지만, 1997년 이후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노사정위원회 등에 상시적으로 참여, 진짜‘대화’와‘타협’을 하려고 했던 한국노총을 자극했던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정부는 조흥은행 문제를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국가 신인도(信認度)와 직결돼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강하고 누구에게는 약하다는 소리도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 스스로 목소리 크고 집단행동에 나서면 대화와 타협을 앞세우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에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신문만 안 보면 다 잘되고 있다’는 생각에 혹시 지도자가 사로잡혀 있다면, 참모들이“이것은 꼭 보셔야 합니다”라고 권유해야 한다.
(문갑식 사회부 차장 대우 gsmoon@chosun.com )
17일 밤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국노총 김성태(金星泰) 사무총장이었다. 안부 인사 나눌 겨를도 없이 그가 외쳤다. “문형, 청와대가 이래도 되는 거요. 우리를 막판까지 몰고 가네. 본때를 보여 줄 거야.” 이 말을 끝으로 뚝 끊긴 그의 음성이 남긴 여운은 한참을 갔다.
18일 아침 8시20분, 기자는 노총 강훈중(姜勳中) 홍보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웅웅거리는 소음 사이로 그도 소리쳤다. “문형, 오전 9시부터 조흥은행 파업 들어갑니다.”전화는 또 끊겼다. 불과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우려했던 대로 조흥은행 노조는 이날 아침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예정보다 1주일을 앞당긴 전격적인 집단행동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조흥은행 노조원들은 청와대에 무더기 사퇴서 전달을 시도했고 17일 오후에는 삭발식도 벌였다.
조흥은행이라는 뇌관(雷管)의 폭발은 머지않아 관련 은행의 동조 파업을 부를 것이고, 이는 다시 노총 산하 영세 기업들의‘2차 폭발’로 이어질 것이다. 기자는 이 시점에서 올해 초‘온건하고 합리적인 노동운동의 모습을 보이겠다’던 한국노총의 다짐을 떠올렸다.
노총 이남순(李南淳) 위원장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이제 노동운동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노동운동은 더 이상 사용자와 노동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어렵지만 해보겠다”고도 했다.
1개월 전 다시 이 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의 말과 표정은 바뀌어 있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하면 (청와대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 그는 조흥은행 본점에 머리띠를 매고 앉아 있다.
조흥은행 매각은 경제적 논리로만 따지면,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예고돼 왔던 것이기에 지금 화제가 된다면 근로자들의 고용승계 정도가 돼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은 당하는 사람에겐 참을 수 없는 것이지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조흥은행 직원들과 상급 단체인 노총은 예금자를 담보로 집단행동을 벌이게 됐는가. 그것은 1차로 노 대통령 스스로 이 문제에 개입해 조흥은행과 노총에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좀더 거시적으로 보면 현 정부가 집권 이후‘목소리 크고 집단행동에 나서면 무엇이든 수용해준다’는 이상한 전통을 만들어 준 게 원인이다.
그 사례는 두산중공업, 철도 노사 분규,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 외에도 무수히 많다.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서‘깽판 치면’선명(鮮明)이요, 합리를 주장하면 어용(御用)이 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더구나 현 정부, 특히 청와대 주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민주노총 출신이 많다. 민노총 출신이 권력 주변에 진입한 게 이번파업의 원인은 아니겠지만, 1997년 이후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노사정위원회 등에 상시적으로 참여, 진짜‘대화’와‘타협’을 하려고 했던 한국노총을 자극했던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정부는 조흥은행 문제를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국가 신인도(信認度)와 직결돼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강하고 누구에게는 약하다는 소리도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 스스로 목소리 크고 집단행동에 나서면 대화와 타협을 앞세우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에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신문만 안 보면 다 잘되고 있다’는 생각에 혹시 지도자가 사로잡혀 있다면, 참모들이“이것은 꼭 보셔야 합니다”라고 권유해야 한다.
(문갑식 사회부 차장 대우 gsmoon@chosun.com )
파업하기 좋은 나라
[시론] 파업하기 좋은 나라......... 정갑영 (2003.06.13)
미국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7년 겨울 조지 워싱턴 장군은 펜실베이니아의 벨리 포지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 영국군과 힘겨운 전투를 치러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군량(軍糧)까지 부족해 병사들이 아사(餓死)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군대를 처참하게 무력화한 또 다른 적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군을 위해 주 의회가 제정한 시장(市場) 통제법이었다. 식량을 포함한 군수품의 가격을 통제하여 워싱턴을 도우려 했지만, 시장은 전혀 다르게 반응하였기 때문이다.
식량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오히려 적군에게 금을 받고 팔아버리기도 했다. 당시 워싱턴의 참패에 교훈을 얻은 대륙 의회는 “향후 시장을 거스르는 어떤 법령도 제정하지 말자”고 결의한 바 있다. 경제정책의 유효성을 이해하게 된 역사적 사건의 하나다.
경제는 법이나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경제는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군을 도우려는 정책이 오히려 굶주림만 더 심화시키는 ‘벨리 포지의 역설(逆說)’을 가져왔다.
어느 정부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는 정책의도와는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참여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로 동북아 중심국가를 건설하고, 지역간 사회적 불균형이 개선된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더 이상 해외요인이나, 취임 초의 혼란이라고 탓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말의 성찬(盛饌)이나 토론만으로 경제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도 없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를 살리려면 궁극적으로 참여정부의 정책코드가 시장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시장의 중심축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기업가와 근로자, 소비자의 마음에 정책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심어 주어야만 한다. 그곳이 바로 경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정책이 불확실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면 경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수년간의 국책사업이 말 한마디로 흔들리는 판에, 어느 용감한 기업가가 투자를 감행하겠는가. 그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한국을 투자대상으로 선택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특정집단에 편향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경제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친노(親勞)의 편향된 시각으로는 기업가를 움직일 수 없고, 투자를 유치할 수 없으며,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없다. 동북아 중심국가도, 복지국가도 모두 성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얘기들이다.
설익은 이념이나 철학으로 국민경제를 실험하거나, 이미 실패한 다른 나라의 경험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행여 친노(親勞) 정책이 실업자를 양산하는 ‘고노(苦勞)’ 정책으로 변질된다면, 또 하나의 역설이 등장하지 않겠는가.
당장 성장률이 1%포인트만 떨어져도 수만 명의 실업자가 증가한다. 그렇다고 친(親)기업을 주장하거나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정책의 코드는 특정계층이 아니라 항상 시장에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엄격한 법과 원칙이 시장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적 규범에 역행하고, 시장의 유연성을 수용하지 못하며, 고용과 성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정책을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기회복의 원동력이 되는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이상이 ‘파업하기 좋은 나라’의 현실로 변질된다면, 국내산업의 공동화(空洞化)만 심화될 뿐이다. 애국심만으로 국내기업을 붙들어 놓을 수도 없다. 경제난국은 세율이나 이자율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코드의 인재를 모아 시장 중심의 정책코드로 다시 뛰게 해야 한다.
(정갑영·연세대 교수·경제학)
미국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7년 겨울 조지 워싱턴 장군은 펜실베이니아의 벨리 포지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 영국군과 힘겨운 전투를 치러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군량(軍糧)까지 부족해 병사들이 아사(餓死)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군대를 처참하게 무력화한 또 다른 적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군을 위해 주 의회가 제정한 시장(市場) 통제법이었다. 식량을 포함한 군수품의 가격을 통제하여 워싱턴을 도우려 했지만, 시장은 전혀 다르게 반응하였기 때문이다.
식량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오히려 적군에게 금을 받고 팔아버리기도 했다. 당시 워싱턴의 참패에 교훈을 얻은 대륙 의회는 “향후 시장을 거스르는 어떤 법령도 제정하지 말자”고 결의한 바 있다. 경제정책의 유효성을 이해하게 된 역사적 사건의 하나다.
경제는 법이나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경제는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군을 도우려는 정책이 오히려 굶주림만 더 심화시키는 ‘벨리 포지의 역설(逆說)’을 가져왔다.
어느 정부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는 정책의도와는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참여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로 동북아 중심국가를 건설하고, 지역간 사회적 불균형이 개선된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더 이상 해외요인이나, 취임 초의 혼란이라고 탓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말의 성찬(盛饌)이나 토론만으로 경제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도 없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를 살리려면 궁극적으로 참여정부의 정책코드가 시장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시장의 중심축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기업가와 근로자, 소비자의 마음에 정책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심어 주어야만 한다. 그곳이 바로 경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정책이 불확실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면 경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수년간의 국책사업이 말 한마디로 흔들리는 판에, 어느 용감한 기업가가 투자를 감행하겠는가. 그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한국을 투자대상으로 선택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특정집단에 편향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경제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친노(親勞)의 편향된 시각으로는 기업가를 움직일 수 없고, 투자를 유치할 수 없으며,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없다. 동북아 중심국가도, 복지국가도 모두 성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얘기들이다.
설익은 이념이나 철학으로 국민경제를 실험하거나, 이미 실패한 다른 나라의 경험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행여 친노(親勞) 정책이 실업자를 양산하는 ‘고노(苦勞)’ 정책으로 변질된다면, 또 하나의 역설이 등장하지 않겠는가.
당장 성장률이 1%포인트만 떨어져도 수만 명의 실업자가 증가한다. 그렇다고 친(親)기업을 주장하거나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정책의 코드는 특정계층이 아니라 항상 시장에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엄격한 법과 원칙이 시장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적 규범에 역행하고, 시장의 유연성을 수용하지 못하며, 고용과 성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정책을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기회복의 원동력이 되는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이상이 ‘파업하기 좋은 나라’의 현실로 변질된다면, 국내산업의 공동화(空洞化)만 심화될 뿐이다. 애국심만으로 국내기업을 붙들어 놓을 수도 없다. 경제난국은 세율이나 이자율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코드의 인재를 모아 시장 중심의 정책코드로 다시 뛰게 해야 한다.
(정갑영·연세대 교수·경제학)
혹세무민 방조하는 정부
[시론] 혹세무민 방조하는 정부........ 김영봉 (2003.06.02)
고 문일평 선생의 기록(史外異聞)에 의하면 1890~95년간 고종임금의 외부고문으로 있던 미국인 ‘산도’가 귀국하여 ‘극동회상록’이라는 조선견문기를 남겼다. 책 중 산도는 조선의 모든 산이 독산(禿山), 즉 빨갛게 허울을 벗었음을 가장 먼저 목격한다. 신기하여 조선인사에게 “귀국은 어이하여 산에 수목을 배양하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그 인사 가로되
“해변에 삼림을 배양하면 외국인이 엿볼 것이요, 산중에 삼림을 배양하면 호표(虎豹)의 환(患)이 염려되노라.”
최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국가 사업들의 행로를 보며 오늘날 한국인의 인식수준이 백년 전 조선시대와 얼마나 다른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집단이 어느 날 그들의 가치만이 절대적이라 포고하고 투쟁, 관철할 것을 선언한다. 주도자들은 단식, 삼보일배 같은 의식(儀式)을 시작하고 이들을 맹신하고 쫓는 백성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마지막에 대통령께서 기왕에 유효한 절차를 거쳐 완료를 앞둔 사업을 백지화, 재검토할 것을 지시한다.
NEIS는 다른 사람 아닌 선생님들이 반대를 주동했다. 보건, 학사의 신상자료를 중앙정보망에 올리면 해킹되고 인권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시스템을 정지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은 산불이 무서우니 민둥산을 만들자는 주장과 많이 다른 것인가? 창문이 있으면 엿보는 자가 있듯이 사이버 시대에 정보해킹자는 피할 수 없는 존재다. 21세기 오늘날 문명의 이기를 폐기할 것을 가르치는 교사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도 또 놀랍다.
한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정보첨단국이다. 은행 증권계좌, 카드회사 고객자료, 기업 기술자료, 병원 진료자료 등 직업해커들이 노릴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또 정부가 국민을 사찰하고자 끝내 자료를 엿보겠다면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에게 학생 신상자료가 더 매력적일 이유도 없고 C/S 시스템이 더 안전하지도 않다고 한다.
시민인권이 절체절명의 가치라면 왜 NEIS뿐인가. 국가는 특별법을 만들어 주민등록·국세청·경찰청·검찰청·법원 등 모든 프라이버시 침해기관의 자료입력을 금지시키고 민간부문 전산자료도 완전 통제해야 한다. 그리하여 수기(手記)문명 시대로 돌아가 북한처럼 살 일이다.
이제 새만금 사업이 NEIS의 기막힌 여로를 되풀이할 차례다. 환경파괴의 위험이 있으니 1조4000억을 투자해 다 막아가는 방조제를 헐고 갯벌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바람을 타고 있다. ‘사라진 갯벌은 다시 복구할 수 없다’ ‘철새, 동물들에게 못할 짓인데 얻는 땅덩이의 가치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이타(利他)적 변설 앞에 이성적 가치계산은 얼마나 천박한가. 향후 정부가 어떤 향배(向背)를 보일지 로켓 과학자 아니라도 예측할 수 있다.
환경이 절체절명의 가치라면 인간은 원시동굴시대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인류진보의 역사 자체가 자연정복의 과정이고 자연소모, 자연파괴 없는 생산은 없다. 환경운동가들이 새만금 갯벌의 환경적 중요성이야 따질 수 있겠지만 어떻게 간척지의 ‘경제적 가치’까지 운위할 자격이 있겠는가. 좁은 땅덩이에 인총이 넘치는 우리는 산을 헐고 하천을 개간, 쓸 땅 못 쓸 땅 다 이용하는데도 땅값은 세계 최고다. 산천으로 꽉 막힌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시대 농업다운 농업을 할 수 있는 땅은 현대의 서산간척지 정도나 꼽힐 것이다. 새만금 땅은 농지로 이용될 수도, 또는 주거지·공장·공원·골프장으로 전용될 수도 있다.
전교조·종교인·시민단체들은 각자의 양심을 표현하고 정치적 목적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와 목적처럼 다른 집단의 가치, 목적을 동등하게 인정할 때에야 진정한 양심인, 양심단체로서 설 수 있다. DJ정부 말기 이래 목소리 높은 자의 극단투쟁과 선전공작은 나날이 극성스러워지고, 비례하여 말없는 다수의 의사는 도용 및 유린된다. 망국을 앞둔 조선말기 때에도 이런 혹세무민에 놀아나고 방조하는 정부는 없었다고 본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고 문일평 선생의 기록(史外異聞)에 의하면 1890~95년간 고종임금의 외부고문으로 있던 미국인 ‘산도’가 귀국하여 ‘극동회상록’이라는 조선견문기를 남겼다. 책 중 산도는 조선의 모든 산이 독산(禿山), 즉 빨갛게 허울을 벗었음을 가장 먼저 목격한다. 신기하여 조선인사에게 “귀국은 어이하여 산에 수목을 배양하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그 인사 가로되
“해변에 삼림을 배양하면 외국인이 엿볼 것이요, 산중에 삼림을 배양하면 호표(虎豹)의 환(患)이 염려되노라.”
최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국가 사업들의 행로를 보며 오늘날 한국인의 인식수준이 백년 전 조선시대와 얼마나 다른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집단이 어느 날 그들의 가치만이 절대적이라 포고하고 투쟁, 관철할 것을 선언한다. 주도자들은 단식, 삼보일배 같은 의식(儀式)을 시작하고 이들을 맹신하고 쫓는 백성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마지막에 대통령께서 기왕에 유효한 절차를 거쳐 완료를 앞둔 사업을 백지화, 재검토할 것을 지시한다.
NEIS는 다른 사람 아닌 선생님들이 반대를 주동했다. 보건, 학사의 신상자료를 중앙정보망에 올리면 해킹되고 인권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시스템을 정지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은 산불이 무서우니 민둥산을 만들자는 주장과 많이 다른 것인가? 창문이 있으면 엿보는 자가 있듯이 사이버 시대에 정보해킹자는 피할 수 없는 존재다. 21세기 오늘날 문명의 이기를 폐기할 것을 가르치는 교사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도 또 놀랍다.
한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정보첨단국이다. 은행 증권계좌, 카드회사 고객자료, 기업 기술자료, 병원 진료자료 등 직업해커들이 노릴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또 정부가 국민을 사찰하고자 끝내 자료를 엿보겠다면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에게 학생 신상자료가 더 매력적일 이유도 없고 C/S 시스템이 더 안전하지도 않다고 한다.
시민인권이 절체절명의 가치라면 왜 NEIS뿐인가. 국가는 특별법을 만들어 주민등록·국세청·경찰청·검찰청·법원 등 모든 프라이버시 침해기관의 자료입력을 금지시키고 민간부문 전산자료도 완전 통제해야 한다. 그리하여 수기(手記)문명 시대로 돌아가 북한처럼 살 일이다.
이제 새만금 사업이 NEIS의 기막힌 여로를 되풀이할 차례다. 환경파괴의 위험이 있으니 1조4000억을 투자해 다 막아가는 방조제를 헐고 갯벌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바람을 타고 있다. ‘사라진 갯벌은 다시 복구할 수 없다’ ‘철새, 동물들에게 못할 짓인데 얻는 땅덩이의 가치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이타(利他)적 변설 앞에 이성적 가치계산은 얼마나 천박한가. 향후 정부가 어떤 향배(向背)를 보일지 로켓 과학자 아니라도 예측할 수 있다.
환경이 절체절명의 가치라면 인간은 원시동굴시대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인류진보의 역사 자체가 자연정복의 과정이고 자연소모, 자연파괴 없는 생산은 없다. 환경운동가들이 새만금 갯벌의 환경적 중요성이야 따질 수 있겠지만 어떻게 간척지의 ‘경제적 가치’까지 운위할 자격이 있겠는가. 좁은 땅덩이에 인총이 넘치는 우리는 산을 헐고 하천을 개간, 쓸 땅 못 쓸 땅 다 이용하는데도 땅값은 세계 최고다. 산천으로 꽉 막힌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시대 농업다운 농업을 할 수 있는 땅은 현대의 서산간척지 정도나 꼽힐 것이다. 새만금 땅은 농지로 이용될 수도, 또는 주거지·공장·공원·골프장으로 전용될 수도 있다.
전교조·종교인·시민단체들은 각자의 양심을 표현하고 정치적 목적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와 목적처럼 다른 집단의 가치, 목적을 동등하게 인정할 때에야 진정한 양심인, 양심단체로서 설 수 있다. DJ정부 말기 이래 목소리 높은 자의 극단투쟁과 선전공작은 나날이 극성스러워지고, 비례하여 말없는 다수의 의사는 도용 및 유린된다. 망국을 앞둔 조선말기 때에도 이런 혹세무민에 놀아나고 방조하는 정부는 없었다고 본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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