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국정이 파탄 직전까지 몰린 것은 정권의 탄생 이유를 잊었기 때문이다. MB정권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했다. 노 정부의 실정(失政)에 신물 난 국민들이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라고 뽑아 주었다. 그것을 아는 MB정부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와 거꾸로만 하면 성공한다"고 장담하곤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거꾸로는커녕 MB정부 하는 일들이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는 전임자를 빼다 박듯 닮았다. 코드 인사며 과격한 시장 개입, 아마추어 국정과 포퓰리즘까지 MB정부의 4개월은 노 정부 5년의 실책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하다. 어처구니없게도 '싸우면서 닮아가는'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를테면 인사다. 노무현 정권은 측근·코드 인사로 5년 내내 비판받았지만 자기 사람 챙기기로 치면 MB정부도 지지 않는다. 내각·비서진이며 공기업까지 권력 핵심과 끈이 닿지 못하면 웬만한 자리의 후보에도 끼지 못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MB정부는 온갖 요직마다 자기편 사람들을 앉히더니 드디어 공천 탈락한 정치인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안택수 전 의원을 신호탄으로 한나라당의 낙선·낙천 부대들이 줄줄이 공기업에 투하되고 있다.
원래 '낙선자 낙하산'은 노 정부가 원조(元祖)격이다. 선거에 떨어진 자기편 사람을 번듯한 감투로 대접하던 노 정부의 '미덕'을 MB정부도 이어받았다.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그렇게도 공격했던 '코드·연줄·보은(報恩) 인사'를 MB정부가 똑같이 반복하고 있으니 정말 아이로니컬하다.
인사뿐일까. 전임자가 그랬듯이 MB정부 역시 시장(市場)과 싸우며 삐걱댄다. MB정부는 입으로는 '시장 프렌들리(친화적)'를 외치면서 행동은 반(反)시장적으로 하는 이상한 정부다. 노무현 정부가 세금 폭탄으로 부동산시장과 격투했다면 MB정부는 달러 폭탄을 난사하며 외환시장과 싸우고 있다.
닮은꼴의 포퓰리즘(대중영합)은 또 어떤가. 복지·증세 등에서 포퓰리즘을 발산했던 전임자처럼 MB정부도 갈수록 대중의 단기적 요구에 영합하고 있다. 1380만명에게 3조원의 '현금 봉투'를 나눠주겠다는 고유가 지원책은 포퓰리즘의 극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소모성 현금보다 성장·일자리의 기반을 짓는 생산적 용도에 쓰는 게 훨씬 MB정부다웠을 것이다.
MB정부는 또한 '아마추어'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게 됐다. 프로 집단임을 자임하던 것과 딴판으로 미국산 쇠고기사태 등에서 형편없는 대응 실력과 정무적 판단 미스를 드러냈다.
이제 국민들은 큰일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또 어떤 범실을 저지를까 조마조마한 심정이 돼버렸다. MB정부가 사는 길은 '노무현증후군'과 결별하는 것뿐인데 똑같은 실패 코스를 질주해가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나마 지금 단계에서 차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성장의 패러다임일 것이다. 국민들은 대선 때 이 대통령이 웅변했던 '고(高)성장의 꿈'을 떠올리며, 언제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마술을 보여줄지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로 성장 노선의 포기를 강요당하면서 최후의 차별화 포인트마저 잃어버렸다. 이달 초 정부가 '7% 성장' 목표의 사실상 폐기를 선언한 순간 MB노믹스(MB정부의 경제 운용)는 정체성 자체가 모호해져 버렸다. 국제 환경도 나빴지만 미숙한 경제 운용 때문에 MB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컸다.
이제 국민들은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성장도 못 하고, 일자리 창출과 공기업 개혁도 제대로 못 해내는 MB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이 준비돼 있다면 MB정부엔 아직 성공의 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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