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4일 월요일

과학과 기술을 쪼개는 어리석음

[동아광장/정재승]과학과 기술을 쪼개는 어리석음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가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중복 업무를 피하고 효율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부조직을 개편하겠다고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공무원 조직의 크기를 줄이기 힘든 상황에서 부처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개편하다 보니, 실상은 ‘조직의 살 빼기’가 아니라 ‘부처 간 힘 빼기’가 돼 버렸다.

권력을 잃기 두려운 부처들은 부처 이름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부처 산하의 이해 집단들도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열심히 설파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부처 통폐합에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원칙과 철학’이 필요하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기술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합쳐져 ‘교육과학부’로 통합돼 과학연구개발 지원과 정부출연연구소 업무를 담당하고, 기술 부문은 따로 떼어 산업자원부에 흡수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과학기술부 업무를 과학과 기술 부문으로 쪼개 다른 부서로 넘기고 과기부는 폐지하겠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2001년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을 ‘문부과학성’으로 통합한 것과 비슷하다. 이 통폐합 안은 인수위가 ‘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科技部분리, 융합시대 역행

과기부 폐지안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과 기술을 쪼개어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꾼다는 데 있다. 이는 통합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21세기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은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과학과 기술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기초적인 나노 과학적 연구 성과는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적 가치를 지니며, 로봇공학의 핵심기술들은 신경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이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과학이 기술의 최전선과 맞닿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융합의 시대에 과학기술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20세기 식으로 구분지어진 과학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 분야별로 ‘과학에서 공학까지’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교육부와 산자부로의 과기부 업무 흡수 안은 효율적인 연구지원 시스템을 저해하는 ‘20세기형 조직 개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부총리제는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국가혁신체제(NIS) 진단 보고서를 통해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으로서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조정능력 향상, 사업 간 중복 방지, 정책 간 협력 증대 및 정책 효율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도 우리를 모델 삼아 과학기술부를 신설해 과학과 공학에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한 바 있다.

교육부와 과기부의 통합안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인문사회과학의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데 있다.

인수위에 참여하는 많은 사회과학분야 교수는 ‘교육부 폐지’ 안을 막기 위해 ‘과기부와의 통합’ 안을 만들었겠지만, 결국 신설되는 교육과학부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과학기술 중심으로만의 교육 개혁’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통합한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이공계 대학 방식의 대학 개혁을 전 분야에 걸쳐 주도하고 있고, 중고교 교육도 수학, 과학 교육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인문사회과학의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교육과학부, 인문학 등한시 우려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은 나름의 전통과 서로 다른 호흡으로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 21세기 융합사회에서 우리가 길러야 할 인재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모두에 균형 잡힌 창조적 리더이지,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절름발이 지식인’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이공계는 위기요, 인문학은 절망이다.

이공계에 절망을 던져 주고 인문학에 죽음을 안겨 줄 ‘과기부 폐지안’에 대해 인수위 및 국회의 재고가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이 융합하는 시대에 걸맞은 ‘21세기형 정부조직’이 절실하다.

정재승 객원논설위원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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