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3일 일요일

통역이 필요 없는 대통령

[동서남북] 통역이 필요없는 대통령........ 홍준호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전국 세무서장과 경찰 지휘관을 상대로 잇따라 특강을 했다. 그 강연 내용을 읽고, 또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동영상을 통해 육성(肉聲)을 들으면서 느낀 소감은 두 가지다. 노 대통령의 꿈은 참 큰 것 같다. 그러나 그 꿈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특강의 주제는 ‘국가개조론’, 제목은 ‘대한민국의 팔자를 고치자’였다. 좋은 얘기이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물었다. “왜, 마(魔)의 1만달러대를 8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는가? 모든 영역에서 그렇게 개혁을 부르짖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가?”

‘변화와 개혁’의 강을 건넌 지난 두 정권을 되돌아보면서 그 선배들이 닦은 토대 위에서 같은 개혁을 부르짖으며 집권한 노 대통령이 이런 테마를 화두로 던진 것은 신선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는 ‘8년째의 정체’를 극복하고, 2만달러시대로 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그 신선함을 특강 내내 유지했다면 뉴스는 온통 2만달러시대로 뒤덮였을 것이다. 또 지금쯤엔 그 목적지로 가기 위한 방략과 과제들을 둘러싼 논쟁이 ‘공무원 노사모’를 만들려는 계산이 있느니 아니니 하는 소모전을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국가적 정체의 원인을 따지고 대책을 말하면서 돌연 ‘형이상학적’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 동안 근본 문제에 손을 대지 못했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 양식이다. 그 행동 양식은 사고 방식에 의해 지배된다. 고로 문화개혁을 해야겠다. 이게 국가 개조다. 그 방향을 잡아서 시스템을 설정해놓겠다’, 대략 이런 요지였다. 2만달러에서 국가 개조, 문화개혁, 시스템으로 단숨에 몇 단계를 뛰어넘는 그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2만달러는 까마득히 잊게 된다. 게다가 그의 결론은 정부 내에 자신과 ‘정신적 맥락을 함께하는 공식·비공식의 개혁주체조직’을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연결됐다. ‘2만달러’는 졸지에 온데간데없어지고 ‘공식·비공식 조직’만 남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지도자의 말은 알기 쉽고 메시지는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국론을 모으고 힘을 결집시킬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특강이 공무원 내 개혁조직 논란으로 비화되자 “딴죽을 거는 것 같다”고, 또 언론을 탓했다. 세력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업무를 혁신하기 위해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 것일 뿐인데, 마치 문화혁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언론이 부풀린다는 불만이었다.

이런 해명대로라면 앞으로 국민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할지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해설자나 통역자를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통역을 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평소 코드가 잘 맞는다는 인사들도 헷갈린 모양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조차 “대통령이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만달러와 개혁주체조직 간의 거리는 그만큼 멀고, 돌고 돌아서 온 만큼 인과관계도 불분명하다.

노 대통령의 말에는 그 동안에도 거품이 많았다. 새 정부의 대북 평화 번영정책이란 것이 이전의 햇볕정책을 승계한 것인지 아닌지, 새만금사업은 계속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크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신당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다는 것인지 아닌지, 수사(修辭)와 말들은 요란했지만 정작 내용은 애매모호했다.

대통령이 통역이 필요없는 말을 써야 혼란이 줄어든다.

(홍준호 정치부장 jhhong@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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