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犬公)들의 색즉시공
해가 길어진 탓인가 저녁 공양을 마치고 산책을 나가면 아직 대낮처럼 여겨진다. 직장 같다 퇴근하는 사람들과 학생들로 골목길이 좀 더 분주해져 보인다. 젊은 부부가 작고 예쁜 애완견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강아지들 하는 짓이 귀여워 내 산책길도 자연스럽게 강아지들 뒤를 따르게 되었다.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있다 나와서 그런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를 무슨 바쁜 일이 있는 듯 연신 뛰어다닌다. 계속해서 땅에 무슨 흥미로운 것이 있는 듯 땅에 대로 코를 벌름거리며 두 마리의 강아지는 서로 경쟁하듯 앞서 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런 와중에 전봇대나 가로수 나무가 나오면 빠트리지 않고 다가가 뒷발 하나를 들고 찍 오줌을 갈긴다. 그런 후 다시 뒷발로 흙이나 땅을 쳐내듯 오줌 눈 곳을 향해 발길 질 한다. 발을 씻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흙으로 자신의 흔적을 덮어 두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는 일어날지 모르나 별 소득 없이 발바닥만 닳아 지는 것 같다.
앞에 지나가는 몸이 흔적을 남기면 으레 뒤따라가는 녀석도 같은 곳을 먼저 냄새 맡고 그 자리에 자신의 자취를 묻힌다. 어떤 경우는 오줌발이 빗나가 엄한 곳에 오줌이 묻었는데도 별 관심 없는 듯 그냥 습관적으로 뒷발 몇 번 튕기고 쏜살 같이 앞에 가는 놈을 추월하느라 내달린다.
명승 고적지나 해외 문화 유산 등을 가보면 한글로 써진 낙서들을 보게 된다. 자신이 이 곳에 왔다 감을 기념하기 위해 나름대로 흔적을 남긴 것들이다. 어떤 곳은 바위에 새긴 경우도 있고 굵고 진한 페인트로 칠한 경우도 있다. 낙서를 쓴 사람을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당사자 외에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곳에 왔다 갔음’을 오래 도록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거나 본인의 흔적이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욕심에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싶다.
개들이 나무나 전봇대에 실례를 하는 것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것이다. 누구의 소유라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여긴 내꺼야’라는 생각에 최대한 많이 자신의 영토를 표시하느라 분주히 옮겨 다니고 집에 다시 들어가야 할 때가 되면 아직 해야 할 일을 많이 남겨 둔 체 떠나기 싫은 세상을 떠나는 사람처럼 깊은 아쉬움을 지닌 체 끌려 들어가다 시피 한다.
정말로 열심히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놓았건만 절대로 안심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나무와 전봇대의 주인은 수십 번 바뀐다. 그 다음 날이 되면 개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무수한 흔적들을 발견할 것이고 그 위에 다시 자신의 흔적을 더해 나도 이곳의 주인임을 확인 시킨다. 어떻게 보면 마치 공동 소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들은 아마도 그렇게 믿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분명 본인의 영역이 맞는데 다른 개들이 자꾸 침범을 해와 자신의 영역임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서로서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러한 영역 표시가 개들한테는 무척 중요한 일과임이 틀림없으며 이러한 중요한 일을 거르게 되면 불안과 스트레스가 개들에게 생길 것이다. 본인들의 재산이라고 강력히 믿고 있는데 그러한 재산을 누군가에게 뺏긴다거나 또 더 넓은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그 자신은 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힘들어 할 것이다.
동네 나무와 전봇대로 표시되는 개들의 영역은 개들 세계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기르는 개가 표시한 영역을 다른 개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그런 친절한 주인이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인간들은 인간들 나름대로 그 땅에 대한 저마다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산다. 거기에 개들의 영역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개들의 눈에는 그러한 인간들의 소유 개념이 또한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개들의 세상에 인간이 침범하고 사는 건지 아니면 인간들의 영역에 개들이 침범하고 사는 건지 규정할 수 없지만 아무튼 서로의 눈에는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믿고 산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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