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 공중무색 是故 空中無色
☆ 눈높이 교육의 귀재 부처님
아무리 불교계가 엉망이라고는 하더라도 적어도 인터넷에서 만큼은 스님들의 활약이 독보적인 것 같습니다. 직접 컴퓨터 화면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검색 '중', 이동'중', 복사'중', 다운로드'중', 파일 읽는'중', 휴지통 비우는'중', 디스크 압축'중...'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저는 불교경전 총론(www.sejon.or.kr)이라는 홈페이지를 몇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회원들의 다양하고 예측 불허하는 질문에 대답하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물론 제 수행의 부족한 탓으로 돌려야 하지만, 변명하자면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가령 '불교적으로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어찌 이해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연기緣起의 결과라고 답해주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답변은 또 다른 의문을 제기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는 답변입니다.
연기란 무엇입니까? 라든가, 존재와 연기가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등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질문들이 예상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럴 경우를 생각해 그 질문에 대답하는 제 나름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답을 하기 전에 질문을 한 회원에게 질문의 의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근원적인 질문을 먼저 해버립니다. 즉,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며, 회원님은 '존재'란 단어를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고 물으신 겁니까? 라고 오히려 되물어 버리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런 저의 방식에 당황하는 기색들이 역력합니다만, 익숙해지면 아주 심도 있는 질문과 답변이 하루 몇 차례씩 이뤄집니다. 심지어는 바둑 다면기 두듯이 저 혼자서 회원 십여 명의 답글에 대해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해주길 몇 차례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회원들은 대개 자신이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런 방식은 저로서는 질문자를 한 분 한 분 세심하게 관찰하는 등 품이 많이 들기는 해도 학습효과 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실은 부처님의 특허나 다름없는 가장 불교적인 설명법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금강경만 하더라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인 수보리 존자의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어보면 부처님은 답을 한번에 말씀하시지 않고 '수보리야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자의 생각을 먼저 물어봅니다. 그리고 질문자인 수보리의 생각의 수준을 들으시고 다시 결론을 내려줍니다. 이렇게 질문자의 수준에 맞추어 법을 설하는 것을 '횡설수설'橫說竪說이라 합니다. 세간에서는 '헛소리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변질되어 있지만, 실은 이처럼 깊은 뜻이 있는 말입니다.
진리의 설명 방법에는 또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스무고개 식으로 '그건 아니다', '그것 역시 아니다'라며 질문자의 생각을 계속 묻고 답을 구해 오면 연신 부정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질문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라'고 자꾸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이 버리라는 주문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질문자 스스로 '감을 잡는' 타이밍이 오게 됩니다. 불법은 서구식西歐式으로 '이것이다'라는 답변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반야심경의 지금까지의 설명법이 '이것이다'라는 방법이었다면, 지금부터의 반야심경은 '이것'만 정답이라는 그릇된 마음을 낼까 우려하여 '그것은 아니다'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불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 당분간 성법스님 저서인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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